<연재소설>(351)벤처기업

최고의 버전<13>

이미 늦게 도착을 했지만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자정이 넘어섰다. 어머니는 바로 옆방에다 이부자리를 깔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 방은 전에 형과 함께 쓰던 나의 방이었다. 사용을 하지 않아서 곡식이며, 집기들이 쌓여 있었다. 그것을 한쪽으로 치우고 요를 깔았는데, 마치 신방을 꾸미듯이 해놓았다. 송혜련과 나는 오랫동안 교제를 하면서 이미 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없어졌으나,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당연한 것같이 생각하고 있었고, 송혜련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 방에서 새로운 첫날밤을 맞이하였다. 물론, 되풀이되는 첫날밤 중의 한 순간에 불과했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서 깨었다. 대문이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잠에서 깬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뛰어나간 어머니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 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어머니의 만용이었다.

『그런데 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웬 일로 집에 들어왔어요?』

『며느리 될 여자가 온다고 하는데 아비된 도리로 안 볼 수가 있어. 어디에다 물어봐도 그런 경우는 없다. 좆같이 놀지 말라우. 며느리 선을 보겠다는데 어느 개새끼가 안된다는 거야? 좆같이 놀고 있네.』

『제발 그 욕 좀 하지 말아요. 아들 체면 좀 세워줘요.』

『체면 좋아하지 마라. 좆같이.』

아버지는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옆방을 향해 소리쳤다.

『영준이 나오라고 해.』

『자고 있어요.』

『깨워 시팔. 잠자러 여기 왔어?』

『제발 조용히 못해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강한 어조였다. 그리고 아버지도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전 같으면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면, 그 말을 가지고 시비를 붙으면서 용납을 하지 못했다. 이미 물건이 날아가거나 손찌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위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별로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깨우기 위해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잠들었던 송혜련이 깨었다. 그녀는 영문을 모른 채 일어나서 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아주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풀어야 하는 숙제처럼 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