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70년대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던 공단이 최근들어 세간의 이목에서 멀어지고 있다. 90년대 이후 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이전하면서 산업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공단 지역은 IMF 이후 경기불황의 여파로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일반인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하지만 최근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공단 지역도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으며 제조업 위주의 공단 지역이 첨단산업의 거점으로 변모하면서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새 천년을 맞아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는 국내 주요 공단의 현주소와 변화상을 조망하는 시리즈를 마련, 주 2회(화·금)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시리즈 순서 : 1회 구로공단, 2회 부평·주안공단, 3회 천안공단, 4회 남동공단, 5회 반월·시화공단, 6회 구미공단, 7회 창원공단, 8회 광주공단, 9회 취재기자 방담>
「섬유·봉제산업 위주의 수출 거점에서 고부가 첨단산업의 메카로의 화려한 변신을 꿈꾸며.」
여공과 굴뚝, 매캐한 매연, 시끄러운 소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로공단」하면 떠올랐던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가 최근들어 벤처, 테크노타운, 정보지식형 산업단지라는 밝고 화려한 이미지로 점차 바뀌고 있다.
65년부터 73년까지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따라 경공업의 집중적인 육성을 위해 조성된 구로공단은 마산산업단지와 함께 70∼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산업현장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90년대들어 제조업체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과 동남아로 생산거점을 옮기면서 구로공단은 산업공동화 현상으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여기에 IMF가 닥치면서 산소 마스크에 연명하는 중환자처럼 근근이 공단의 명맥만을 유지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
70∼80년대 「수출한국의 꽃」이라 불렸던 영광의 시간을 뒤로 하고 쓸쓸하고 침체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곳은 이제 현대식 시설을 갖춘 아파트형 공장이 잇따라 들어서고 기존 입주업체의 업종전환과 신생 벤처기업들의 신규 입주가 활발해지면서 21세기 한국 벤처산업을 주도하는 산업의 메카로 화려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입주 업체의 대다수가 경공업 위주의 일반 제조업체였던 구로공단에 최근 아파트형 공장과 전자·정보통신 위주의 벤처기업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벤처밸리」로 명명되면서 IT(정보기술)산업의 중심지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테헤란로와는 달리 소리소문 없이 첨단 벤처기업의 유망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전체 입주업체 494개의 30%에 달하는 141개 업체가 전기·전자업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전기·전자업체의 생산액이 전체 생산액 3626억원의 55%가 넘는 203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자·정보통신업체의 숫자가 크게 늘고 있어 구로공단은 조만간 굴뚝과 연기가 없는 공단 지역으로 변모할 전망이다.
구로공단에 입주하는 벤처기업들은 서울벤처밸리에 자리잡은 벤처기업들과는 다르다. 「인터넷」 등 서비스 위주로 이뤄진 테헤란로의 서울벤처밸리와는 성격이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
첨단 통신부품과 단말기, 네트워크장비 등 제조업과 생산기술에 기반을 둔 첨단 고부가가치 위주의 사업을 전개하면서 서울벤처밸리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자기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제조업으로 성장한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구로공단에 「하드웨어」 중심의 벤처기업들이 잇따라 둥지를 트는 것은 이 지역의 공장과 건물의 임대료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분야의 고급인력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교통 여건이 좋아 신생 벤처기업들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구로공단의 이미지 변신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 2006년까지 이 지역을 벤처 및 고도기술·패션디자인·지식산업 단지로 조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마련,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구로공단의 변화에는 앞으로 더욱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공단 조성 초창기의 낡고 허름한 건물·공장과 함께 최근 지어진 아파트형 공장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며 1965년부터 2000년까지 35년의 세월이 상존하는 구로공단.
잔업과 휴일근무가 많아 한푼의 월급이라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있기가 있었던 「가난과 배고픔」의 시절이 언제였던가 싶게 이제 공단내 도로에는 근로자들의 출퇴근용 자가용이 빽빽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잔업이 없고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신생 벤처기업이 인기 최고의 회사로 떠오르는 새로운 가능성의 땅.
근로자들의 땀과 저임금을 무기로 수출한국의 영광을 일궜던 구로공단이 과거의 영욕을 뒤로 하고 이제는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하드웨어 위주의 벤처기업들과 함께 한국 경제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것이다.
<김성욱기자 swkim @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