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전 디지털 혁명을 이끈다>3회-정보가전과 컴퓨터의 주도권 잡기 경쟁

지난 90년대까지 디지털 혁명을 이끌어 온 것은 컴퓨터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도 컴퓨터의 독주가 계속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디지털TV를 선두로 한 정보가전이 디지털 혁명의 주역이 되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디지털 혁명이 사무실과 산업기반 시설을 대상으로 추진됐다면 21세기의 디지털 혁명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홈 네트워킹 분야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유무선 네트워크가 광범위하게 구축되면서 가정과 직장, 가정과 산업인프라가 하나로 통합돼 집안에 앉아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정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일하고 쇼핑하고 뱅킹하는 시대가 되면 홈 네트워킹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홈 네트워크는 PC에서부터 TV·디지털 카메라·냉장고 등 모든 가전제품을 무선 또는 유선으로 연결시킨 것을 말한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들은 홈 네트워킹 시장이 올해 10억 달러에서 오는 2002년에는 20억 달러로 폭발적인 신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홈 네트워킹 시장을 선점하려는 가전·컴퓨터업체들의 경쟁 또한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먼저 홈 네트워킹의 두뇌역할을 하는 제어시스템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컴퓨터가 필요 없는 시스템을 구성하려는 측과 컴퓨터를 중핵으로 놓으려는 양대 진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컴퓨터 없이 홈 네트워킹을 구성하려는 측은 IEEE1394를 표준으로 하는 HAVi(Home Audio Video Interoperability) 진영. 이 시스템은 컴퓨터 없이도 네트워크를 구성, TV 예약녹화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방에 있는 DVD기기나 오디오도 조작해 음악이나 영상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HAVi는 소니·필립스·그룬디히·톰슨 등 가전업체가 중심이 돼 시작됐으며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해 미쓰비시전기·산요전기·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15개사가 추가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전업체들의 홈 네트워킹 시장 공략의 선봉장은 무엇보다 디지털TV다. 디지털TV는 세트톱박스만 장착하면 인터넷과 연결될 수 있다. 앞으로는 아예 인터넷 세트톱박스를 내장한 TV가 생산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TV는 과거 단순 정보전달의 이미지를 벗고 정보화 기기의 총아로 거듭나게 된다.

TV를 중심으로 냉장고·전자레인지 등 디지털 가전제품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홈 네트워킹의 주력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HAVi가 가전업체에서 나온 것이라면 컴퓨터를 홈 네트워킹의 중핵으로 삼으려는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사의 OS를 기반으로 한 유니버설 플러그 앤 플레이(Universal Plug and Play)를 홈 네트워킹의 중핵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컴퓨터를 통해 가전기기와 통신시스템 등을 통제하고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MS의 유니버설 프러그 앤 플레이 측이 홈 네트워킹 시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으나 일본 업체를 중심으로 한 HAVi 진영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컴퓨터 업체들은 디지털TV에 맞서 싸울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로 네트워크 컴퓨터(NC)나 초간편 PC(SIPC), 레거시 프리PC 등을 내세우고 있다.

컴퓨터는 그동안 사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지만 이들 신개념의 PC는 PC를 TV나 오디오와 같은 일반 가전용품처럼 값싸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가전과 컴퓨터 업체들의 홈 네트워킹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지겠지만 결국에는 정보가전과 컴퓨터가 하나로 융합되거나 정보가전과 컴퓨터 모두를 만족시키는 홈 네트워킹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전은 컴퓨터의 그늘에서 벗어나 디지털 혁명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자리잡을 전망이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