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버전<15>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다. 그동안에 벌어놓은 돈이라고 해야 많은 것도 아니었고, 거의 사업자금에 재투자되어 있어서 결혼식을 풍족하게 올릴 처지는 못되었다. 형식적인 최소한의 예물로 예를 갖추었을 뿐이었다. 송혜련은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였던 것을 결산하면서 그 퇴직금을 받아 아파트 사는 데 보탰다.
신혼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신혼생활이라고 해야 새로울 것이 없었다. 송혜련과는 오랫동안 사귀어 오면서 이미 신혼의 예행 연습을 많이 했던 처지이고, 서로간에 신비감도 없어져 있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오로지 사업에 온 신경을 쏟았다. 신혼시절에는 신혼의 밀월 속에 푹 빠져 있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지만, 내가 빠져 있었던 것은 컴퓨터였다. 나는 밤늦게 컴퓨터를 놓고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고, 연구에 몰두하느라 밤을 새웠다. 아내와 함께 있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와 함께 밤을 새우면 그렇게 행복했던 것이다.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왔는데 그날 저녁에 회사로부터 전화연락이 왔다.
『기술과장 윤대섭입니다. 어제 한전에서 연락이 와서 서울역 신청사 조명제어 장치 점검을 했습니다. 전원에 트러블이 있는 모양인데 아무리 찾아도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서울역 신청사의 전원 제어장치 시스템은 우리 회사가 설치해 준 것이었다. 날이 밝으면 불이 나가고, 밤이 되면 불이 들어오도록 되어 있는 자동 점멸 장치에 이상이 생겼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곳에서 일어난 트러블 슈팅(Trouble Shooting)의 원인을 찾아야 했다. 윤 과장이 직접 나가서 점검을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나는 그날 밤에 회사로 나가서 윤 과장과 함께 서울역으로 향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셔서 피곤하실 텐데 불러서 미안합니다.』
『이게 어디 남의 일이오? 간단한 것이니까 밝혀지겠지요.』
『제가 점검을 했는데 알 수 없었습니다.』
『내가 한번 찾아보지요.』
우리는 서울역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전원 단자가 지하실에 있었다. 그곳의 관리인과 함께 자하실의 기계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쪽의 전원 단자함을 열고 시스템 점검에 들어갔다. 잠깐 점검을 하는 것으로 고장의 원인을 찾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트러블 슈팅의 프로그램 스텝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