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로봇이란 사람을 대신해 험한 일들을 시키기 위해 인간이 개발해 낸 인공머슴격이다.
이런 인공머슴이 드디어 잔심부름 하는 단계를 벗어나 사람의 원초적 욕망인 싸움닭 역할을 하는 세상이 됐다.
인간의 내면에는 원래부터 호전적인 측면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동양에서 나온 얘기가 성악설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버릇했던 인간은 급기야는 전쟁을 벌이곤 한다.
그래서 고대 올림픽종목에 지금의 레슬링이나 권투와 같은 격투기가 포함돼 있었고 지금 근대 올림픽에서 대단한 메달박스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사람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거나 먹고 살기가 편해질수록 싸우는 것을 싫어하고 그 대신 남이 싸우는 것을 즐겨 본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사각의 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움을 대신하며 돈벌기에 나선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권투 선수들이나 레슬러들도 21세기에는 더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
지구촌 곳곳에서 로봇을 이용해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들일까 궁리하는 사람들은 별의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아이디어를 짜낸다. 엔터테인먼트의 천국인 미국 할리우드 기획자들은 로봇을 이용해 영화 속의 얘기가 아니라 라스베이거스 시저스호텔의 특설 링을 빌려 로봇이 대신 싸우게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로봇 액션 「배틀봇」으로 불리는 현실 액션물을 실제 재현하자는 아이디어인데 한마디로 일종의 로봇 대전 시합이다. 기존 로봇축구 등이 맥없는 경기라면 박력있고 좀더 파괴적인 서바이벌 게임이다. 136㎏에 이르는 로봇들이 망치나 톱, 칼 등으로 상대편 로봇을 파괴하는 그야말로 할리우드 SF액션을 사각의 링에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하면 속이 시원할 텐데 윤리·도덕적인 측면에서 실현이 불가능하니 로봇을 대신해 즐겨보자는 일종의 대리만족인 셈이다.
꾀나 값이 나가는 로봇들을 가지고 이런 파괴적인 게임을 통해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상상의 로봇대전을 직접 실현하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준비회의가 열렸으며 조만간 실제 경기를 벌이기로 하고 현제 관람티켓을 판매중이다. 또 케이블TV로 마이클 타이슨의 경기처럼 유료채널에서 생중계한다는 계획이다.
주최측은 향후 이 로봇대전을 마치 프로권투나 프로레슬링처럼 하나의 쇼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른 경기규칙도 제정중이다.
로봇 중량에 따라 권투처럼 등급을 간단하게 4단계로 나누고 바퀴를 장착하지 않는 타입과 장착하는 타입으로 다시 분류해 총 8개 체급으로 구분했다.
최고 중량의 경우 그 무게가 211㎏에 육박하게 된다. 또 게임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프로레슬링처럼 등급에 상관없이 단체로 싸우는 일명 「로열 럼블」도 준비중이다.
일반 경기시간은 권투 한 라운드 시간인 3분이며 로봇 보수와 배터리 충전을 위해 한 게임에 참가한 로봇은 20분 동안 휴식을 취한다. 링은 가로·세로 각 14m의 정사각형이며 링 안에는 로봇을 손상시킬 수 있는 장애물들이 널려 있다. 이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참가 로봇은 상대를 3분 이내에 작동불능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못했을 경우는 세 명의 심판의 합의를 거쳐서 판정으로 승부를 가리게 된다. 「로열 럼블」의 경우는 16개의 로봇이 한 경기장에서 말 그대로 난투극을 벌이게 되는데 한 라운드는 3분 동안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어야 승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남은 절반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서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최강자를 가리게 된다.
무기의 경우는 발사형이나 폭발형 무기는 금지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육탄전투가 벌어지게 돼 관객들의 흥미를 더하게 된다.
로봇이 지닐 무기들은 망치나 도끼, 단두대 비슷한 칼, 회전톱날 등 좀 살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주최측은 아직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흥미를 더욱 유발하기 위해서 지난 시합의 승자를 비밀에 붙이고 돈을 내야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이같은 로봇대전의 아이디어를 개발해낸 미국은 역시 엔터테인먼트의 천국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과학기술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