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의 중요한 행동양식을 적절히 표현하는 문자코드다.
21세기에 접어든 시점에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모든 사회활동을 「다 먹자고 하는 일」로 간단히 정의한다. 굶주리지 않는 것만이 지상과제였던 농경산업시대의 경구가 인터넷 세상에서도 절대 진리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말 이 땅에 발을 디딘 외국 선교사들은 조선사람의 유별난 식탐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영양가 낮은 채식위주의 식생활, 인력의존도가 높은 농업경제는 우리 민족을 끊임없이 먹는 데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해방과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식생활은 점차 서구화하고 캔, 라면, 패스트푸드 등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가공식품과 외식문화가 번창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20세기말 전례없이 다양하고 풍요로운 식생활 수준을 달성했고 살빼기 위해 일부러 굶는 사람도 날로 증가하는 세상에 살게 됐다.
인터넷시대, 한국인의 먹는 문화는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우선 예상되는 변화상은 전세계의 다양한 음식, 온갖 색다른 풍미가 인터넷을 타고 네티즌의 식욕을 자극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구하기 힘들었던 베트남산 쌀국수, 인도산 향신료 등 지역특유의 음식재료가 네트워크를 통해 개인주방에 올라가고 먹는 방법도 널리 알려짐에 따라 이른바 퓨전푸드의 전성시대가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맵고 발효된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민족의 입맛이 바뀌는 것은 아니더라도 인도향신료로 양념한 청국장처럼 희한한 변종음식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수입업자가 들여오는 식재료로 외국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네티즌이 능동적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주문하는 환경에서는 지역고유 농산물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토속음식의 입지가 다소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시대에 음식과 관련된 또 하나의 트렌드는 그동안 구미 선진국에서나 있을 법했던 「저콜레스테롤, 저칼로리 식품」을 둘러싼 논란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서양과 식생활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저런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고 강건너 불보듯 느긋하게만 쳐다볼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마우스, 키보드만 두드리는 근로환경에서 보통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남아도는 칼로리를 적절히 소비하거나 아예 적은 열량을 섭취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먹는 것으로 칼로리를 조절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더 쉽다. 삼겹살, 순대, 떡볶이 등 일상적인 음식에까지 그램당 콜레스테롤, 열량수치가 표기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
또다른 전망은 가정마다 나름대로의 요리방법이 훌륭한 인터넷콘텐츠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 손맛으로 불리던 비전의 조리법이 네트워크제어가 가능한 수준으로 계량화함에 따라 새내기 주부가 어머니 솜씨를 그럴싸하게 흉내내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초보주부의 서툰 요리솜씨가 일정수준에 오르기까지 남편들이 감내했던 시간도 극적으로 단축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외국음식정보의 홍수 속에서 고유한 음식문화를 계량화하는 작업도 필수적이다. 혹시 우리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별미음식이 인터넷을 타고 세계인의 인기요리로 떠오를지 누가 알겠는가.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