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버전<17>
나는 큰 아이를 낳아 산후 얼마 되지 않은 아내에게 부탁을 해서 사채(私債)조차 끌어대었다. 자금 조달은 역시 은행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아내가 나보다 앞서 있었다. 기업체를 운영한 나보다 현금 조달 능력이 앞섰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었지만, 실제 겪어보니 그랬던 것이다. 그녀는 직원들의 월급을 제대로 못주게 되자 어느 때는 친가의 라인을 통해 빚을 내기도 하였고, 과거 은행의 당좌거래 창구에 있을 때 도와주었던 거래처의 돈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자 기술자를 비롯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기술자일 뿐 사업가는 못되는 것일까?』
그때 처음으로 한계감을 느꼈다. 지난번에 부도를 내었을 때만 하여도 나는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다시 해낼 자신이 있었고, 실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이번만은 기진맥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르니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황급히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에는 아내가 없고 포대기에 싸인 아이가 울고 있었다. 당황하고 있는데 조금 있자 아내가 봉투에 무엇인가 들고 들어왔다.
『밤늦게 아이를 혼자 놔두고 어딜 다니는 거요?』
아내는 대답도 하지 않고 가져온 봉투를 열고 우유통을 꺼내 그것을 타서 아이의 입에 물렸다.
『우유 사러 갔단 말이야? 그럼 그런 것은 일찍일찍 다니지.』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입을 다물었지만 아내는 울면서 말했다.
『집안이 우에 돌아가는지 신경 안쓰고 회사 일이나 매달리지예?』
『그게 무슨 말이야?』
『나에게 생활비를 준 지가 언제지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거의 반년이 넘도록 그녀에게 돈을 준 기억이 없다. 오히려 그녀에게 빚을 얻어오게 했을 뿐이다.
『아이에게 사 줄 우유값도 없어예. 오늘 당신이 오면 우유를 사오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늦게까지 오지도 않아서…. 우유를 먹어야 할 듯해 나가서 전당포에 반지를 잡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걸리고, 문 연 전당포가 없어서 한동안 해맸어예. 당신은 도대체 회사를 어떻게 하고 있는 거예? 다시 시작합시더. 이 아파트 팔고 이사해예. 그리고 내가 회사에 나가 일할 께예. 경리도 보고, 업무도 할 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