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국 공단지역 중 가장 많은 수출실적을 올려 수출입국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공단.
그러나 이제는 예전의 자부심은 온 데 간 데 없고 부평·주안공단은 전국에 산재한 그저 그런 공단 중 하나로 전락했다.
289만평 면적의 신흥공단인 남동공단이나 한해에 100억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리는 울산공단 등과 비교하면 부평·주안공단의 모습은 해가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다.
퇴근시간 무렵 주안공단의 대우통신 앞 사거리 버스 정류장. 예전 같으면 버스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든 미혼의 여공들로 붐볐던 이곳에서 이제 여공의 모습을 찾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자가용 출퇴근이 많아진 탓도 있지만 이곳에서 일하던 많은 여성 근로자들이 보수가 더욱 좋은 서비스업으로 자리를 옮긴 탓.
부평공단에서 일하다 이곳으로 옮긴 지 10년 정도 됐다는 공단 입주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제 전체 여성 근로자 10명 중 7명 정도는 주부사원』이라며 『업체에서도 이직이 잦은 미혼여성보다는 안정적으로 오래 고용할 수 있는 주부사원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부평·주안공단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공장가동률을 60%선으로 끌어내린 IMF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 지역에 섬유·봉제 등과 같은 사양단계에 접어든 노동집약형 업종의 업체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봉제공장에서 스팀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연기로 공단 곳곳이 자욱했지만 이제는 연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부평·주안공단 주변에 아파트가 많이 생겨 공해유발 공장이 버텨낼 재간이 없게 된 때문이지요.』
5∼6년 전부터 주안의 새한미디어, 부평의 전남방직과 한국베어링 등과 같은 비교적 규모가 큰 기업이 지방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주안의 삼익악기 등이 구조조정을 통해 대규모 감원을 실시한 것도 이 지역이 침체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부평·주안 지역 도심이 빠르게 주변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공장용지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해 기존의 저부가가치산업으로는 채산이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은 다른 공단지역에 비해 지가가 월등히 비싼 편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현재 부평공단과 주안공단의 평당 감정가는 각각 170만원과 135만원. 서울에 있는 구로공단(300만원)에 비해 떨어지는 가격이지만 남동공단(72만원), 반월공단(90만원), 시화공단(50만7000원) 등 다른 여타 수도권 공단에 비해서는 배 정도 비싼 가격이다. 이렇다 보니 저절로 섬유 등 저부가가치업체들은 이곳을 떠나 지방으로 이전하는 구조조정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부평·주안공단은 나름대로 장점을 갖고 있다.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 남짓이면 김포공항과 인천항에 진입할 수 있어 물류비용과 시간이 적게 드는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노동력의 질이 월등히 높아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따라서 부평·주안공단에도 입지를 중요시하는 도시형 업종의 업체들의 입주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7년 전에 이곳을 떠났다 최근 다시 오게 됐다는 한 회사원은 『주안공단의 5공단과 6공단 사이의 복개 도로는 7년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이며 부평공단 큰길 건너편 갈산동 아파트 단지 밀집 지역 역시 전부 논밭이던 자리였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이 지역에 새로 들어선 업체는 광진·진흥전자(인쇄회로기판), 천지정밀(무전전화기 부품), 신우전자(CCTV 부품), 에이치케이(유선통신장치), 금호정밀(전자부품) 등 모두 25개사. 이들 중 대부분의 업체는 전자·통신 관련 업체들로 제조업에 기반을 둔 첨단벤처기업이다.
현재 이 지역에 입주한 벤처기업의 비율은 38%선. 1994년까지만해도 이 지역에 입주한 첨단업체는 전체의 10% 정도인 26개사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움직임을 타고 한국산업단지공단은 부평·주안공단의 업종재배치작업을 통해 2008년까지 이 지역 모든 입주업체를 첨단지식 기반 제조업체로 전환시킨다는 계획이어서 부평·주안공단은 빠르게 첨단산업단지로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가 없지 않다. 현재 높은 지가 때문에 영세한 임차업체들의 입주가 점차 늘어나는 점이다. 더구나 산업단지 관리기본계획이 임차업체일 경우 첨단산업이 아니어도 도시형산업이기만 하면 입주가 가능하도록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 임차업체의 증가가 필연적이어서 첨단업체의 재배치 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이 지역에 새로 입주한 25개 업체의 절반이 넘는 14개 업체가 임차업체다. 물론 지난해 입주한 임차업체들이 대부분 첨단업종업체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기존 업종의 업체들이 임차로 입주할 경우 이를 제한할 방법이 사실상 없어 오히려 영세한 업체들의 난립으로 공단 환경만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이제 이 지역도 조금씩 정상궤도를 찾고 있다. 한때 60%선까지 떨어졌던 공장가동률이 80%선을 웃돌기 시작했으며 사업을 확장하는 업체들도 생기고 있다.
주안단지에 있는 반도체장비업체 한미의 박광현 총무부장은 『지난달 인력을 새로 충원했으며 공장 맞은편 주차장 부지 1000평에 3층짜리 공장을 새로 지을 계획』이라고 밝힌다. 대한마이크로전자와 광진전자 등도 사업을 확장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입국을 위해 젊음을 헌신한 여공들의 애환이 서린 이곳 반월·주안공단이 고부가 첨단화를 통해 다시 한번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황도연기자 dyhwang @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