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버전<18>
『아이는 어떻게 하고?』
『아이는 동생이 놀고 있으니 와서 봐달라고 하지에.』
『아파트를 팔아도 빚을 모두 갚을 수는 없을 거야.』
『그렇지만 우선 쪼들리는 것은 면하지에.』
나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곰곰이 생각하면 그 방법도 돌파구의 하나였다. 나는 즉시 새로운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먼저 집부터 시작한 것인데, 살고 있는 36평형 아파트를 팔고 500만원의 월세방으로 이사했다. 30여명이 되던 직원들은 반이 넘게 나갔지만, 그 중에서 연구 기술자를 제외하고는 대폭 줄였다. 총무와 경리직을 간소화하면서 그것을 아내가 관장하게 했다.
회사 운영을 거의 아내에게 맡긴 상태에서 나는 PCMS 연구에 몰두했다. 부족한 것을 보완해서 완벽을 기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시장의 확대를 염두에 두고 PCMS의 다양화를 추진했다. 그때 설계한 프로그램의 다양성은 공장자동화, 물 처리, 빌딩자동화, 원격제어 시스템이었다. 이것이 종합적으로 혼용 되면서 50여종의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와 컨트롤러의 통신체계를 분석하여 통제할 수 있다.
다시 시작한 지 2년 동안 연구에 매진했다. 나는 회사에서 연구에 몰두했고, 밤늦게 집에 와서도 컴퓨터에 매달렸다. 전에는 승용차를 타고도 노트북을 펴들고 연구했지만, 회사 긴축 경제를 구현하면서 운전 기사를 내보내고 손수 운전을 하면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밤늦게 귀가하다가 휘발유가 떨어져서 낭패를 보기도 하였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온 관심이 쏠리다 보니 다른 일을 등한시했다.
PCMS 도스 5.3을 완성하여 특허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상품을 팔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공단에 가서 설명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였고, 그쪽에서 카탈로그를 제시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종씨, 제품을 만들었으면 그 홍보책자가 있어야지 않소? 그것을 어떻게 일일이 설명하려고 하오. 신문 광고도 내시오.』
전기 제품을 생산하는 흥업전자에서 설명회를 마쳤을 때 최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충고했다. 그는 성씨가 같다고 해서 나를 부를 때 종씨라고 했다. 지금도 그는 나를 부를 때면 꼭 종씨라고 호칭했는데, 내가 완성품 PCMS를 최초로 팔았던 업체였다. 그 공장은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최하 가격인 350만원으로 시스템 한 장을 구매했었다. 한 장에 350만원에서 1000만원 전후인데, 공장의 규모에 따라 그것이 한두 장 필요한 경우도 있고, 수십장 필요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