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가 IMF라는 긴 어둠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벤처산업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실험과 모험 정신을 근간으로 한 벤처산업은 우리 국민의 정서와도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막 싹을 틔운 벤처산업을 단순한 열풍이 아닌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국가정책 수립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준호 중소기업청장은 『새 천년은 벤처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함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21세기는 기동성과 유연성이 뛰어난 중소·벤처 기업의 시대』라며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에서 국가간·기업간 무차별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육성책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하다』고 밝혔다.
벤처·중소 기업 육성의 실질적 총 사령관인 한준호 청장을 박광선 기술산업부장이 만났다. 편집자
-중소기업은 그 나라 경제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경제의 뿌리는 그다지 튼튼한 편이 아닌데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해 주십시오.
▲경제 위기가 극복되면서 중소기업의 창업이 급증하는 등 양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력이 취약해 질적인 면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보다 부채비율이 높고 경영 투명성이 미흡하다는 점입니다. 또 담보 위주로 대출하는 금융기관의 관행이 지속되는 등 경영여건이 선진국보다 취약합니다.
그뿐 아니라 대기업과의 수급관계 비율이 약 60%에 달하는 등 수직적·의존적 거래관계가 지속되고 상당수 중소기업이 외부 의존적 기업경영에 익숙해 있는 것도 고쳐 나가야 할 점이라고 봅니다.
-중소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자금난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해 중기청에서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정부는 그 동안 금융 이용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에 대한 가용자금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난해에는 우리 청에서 신용보증기관에 1.5조원을 출연, 총 30조원 규모의 신용보증을 지원한 데 이어 구조개선자금과 경영안정자금, 중소·벤처 기업 창업자금 등을 통해 3조원이 넘는 정책자금을 융자형태로 중소기업에 지원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중기청은 올 한 해를 중소기업 자금지원시책의 효율성을 제공하는 원년으로 삼고 보다 실효성 있는 중소기업 자금지원시책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아울러 양적인 자금지원 확대 정책에서 탈피,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질적 지원을 추진해 나갈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인 중소기업특별위원회가 중심이 돼 흩어져 있는 각 부처의 지원금리와 조건 등 중소기업 자금지원시책을 유기적으로 조정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또 벤처기업과 일반 중소기업 등 다양한 유형의 기업을 대상으로 융자 위주의 지원에서 투자 위주의 지원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지난 1월24일에 개최한 「새 천년 벤처인과의 만남」이라는 행사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전세계적으로 새 천년의 화두는 벤처기업의 육성과 발전을 통한 부의 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과거 어떤 시기보다 중소기업의 기술 발전과 벤처기업의 창업에 관심을 두고 벤처드라이브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새 천년 벤처인과의 만남 행사는 이러한 세계적인 벤처기업 육성 추세에 걸맞게 보다 강력한 벤처기업 육성의지를 표명함으로써 벤처기업을 독려하고 국민 모두에게 새로운 천년에 걸맞는 희망을 제시하는 데 근본취지가 있습니다.
특히 이번 행사를 통해 벤처기업이 밀집돼 있는 테헤란로를 대통령께서 직접 방문,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진 것은 향후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이 벤처기업인과 벤처캐피털 등 수요자 중심의 민간 위주 정책으로 전환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올 벤처기업 육성정책 방향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정부는 벤처기업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대와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정부 주도의 다양한 지원제도 마련과 기초적인 인프라 구축에 역점을 두어 왔습니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부터는 기존에 구축된 시장과 인프라의 내실화에 주력, 그 동안 개발된 다양한 시책을 우리 실정에 맞게 정착시키고 정책의 효율성을 제고시켜 나갈 방침입니다.
특히 창업보육센터와 벤처빌딩 설립 등을 통해 벤처기업의 창업에서부터 성장단계별 인프라 확충에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한편 수도권 중심의 벤처 열기를 지방으로 확산시켜 전국적인 벤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예정입니다.
벤처기업의 국제화 초석을 다져 세계적인 기업의 탄생 기반을 조성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벤처기업 위주로 정책을 추진, 일반 중소기업의 소외감이 크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습니다. 청장께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현 벤처정책은 벤처기업의 창업 육성이 주 대상이지만 기존 일반 중소기업의 신기술·신지식 집약화를 유도, 벤처기업으로 전환토록 함으로써 우리 산업구조의 고부가가치를 도모하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일반 중소기업도 벤처기업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면 언제든지 벤처기업으로의 전환이 가능하고 정책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일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자금이 벤처기업보다 훨씬 많은데다 기술지도와 판매지원 등 기존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으로도 벤처기업 육성과 함께 기존 일반 중소기업을 벤처기업화해 우리 산업 전체를 고도화하고 고부가가치화해 나가려는 정부의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코스닥 시장이 너무 과열돼 있다는 지적인데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떤지요.
▲코스닥 시장은 연초 대비 거래대금은 135배, 거래량은 34배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벤처기업 중심 시장인 코스닥 시장은 필연적으로 고위험·고수입이라는 벤처기업의 특성이 반영돼 기존의 거래소 시장에 비해 빠르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코스닥 시장 건전화를 위한 발전 방안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등록 및 퇴출제도 개선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공시기능 및 불공정거래 감시기능 강화, 전산시스템의 인프라를 강화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향후 이 같은 조치들을 통해 코스닥 시장이 완전한 정착단계에 접어들면 수요·공급에 따라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육성을 위해서는 코스닥 시장도 중요하지만 M&A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습니까.
▲벤처기업은 금융기관 등을 통한 융자금보다는 벤처캐피털과 주식 시장 등 직접 금융 시장을 통해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코스닥 시장이나 M&A 시장에서 벤처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난 후 투자자금 회수가 보장돼야만 벤처기업 성장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코스닥 시장의 활성화 외에도 우선적으로 벤처기업 M&A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중에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략적 제휴를 목적으로 한 벤처기업간 주식 교환시 양도소득세 50% 감면 혜택을 부여하고 현재 운영중인 벤처기업 법률자문단에 M&A 전문 변호사를 보강, 벤처기업 M&A에 필요한 법적 지원에 나설 방침입니다.
또 거래소 시장 상장 또는 코스닥 시장 등록 이전이라도 중소·벤처기업의 자금 조달이 보다 활성화할 수 있도록 올 상반기 중 (주)코스닥 증권 시장 내에 장외주식 시장을 개설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청장께서는 올해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등 국제화 기반의 초석을 다지는 원년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습니까.
▲세계 일류 기업이 아니면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생존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연내 미국 실리콘밸리에 한국벤처지원센터(KVC)를 설치, 벤처기업의 미국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고 한미벤처진흥재단(가칭)을 설립, 미국 벤처기업과의 협력 사업을 추진토록 할 생각입니다. 미국 외에도 유럽과 일본 등 전세계 한인 벤처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KOTRA 해외무역관을 벤처기업의 수출지원체제로 개편해 나가겠습니다.
-우리의 벤처지원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벤처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외국의 벤처기업 현황 및 육성정책은 어떻습니까.
▲미국은 기술과 자본의 완벽한 결합으로 실리콘밸리 생성 등 4만개의 벤처기업이 존재하는 벤처천국입니다. 이스라엘은 국방 기술의 강점을 민간에 활용하고 정부 주도의 공공 벤처펀드인 요즈마펀드를 조성, 벤처산업을 촉발시켰습니다.
인도 역시 정부의 소프트웨어 산업 적극 육성책에 따라 미국에 이어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이 발달, 미 포천지 선정 100대 기업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의뢰의 50% 정도를 수주하는 등 벤처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벤처정책을 미국처럼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 정부정책은 정부 주도에 의해 범국가적인 벤처기업 붐을 조성하기 위한 한시적·단기적인 조치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변화가 빠르고 기술혁신을 특징으로 하는 벤처기업 육성은 민간 자율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벤처기업법이 소멸되는 2007년에는 우리 나라도 벤처기업을 둘러싼 제반 인프라와 시장이 어느 정도 형성돼 원활히 작동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때쯤 되면 벤처기업 범위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하는 것보다 미국처럼 벤처캐피털 시장에 의해 벤처기업이 자연스럽게 정의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거론된 정부의 다양한 정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된다면 중소기업의 미래 모습도 크게 달라질 것 같습니다만 청장께서 그리는 중소기업의 미래는 어떤 그림입니까.
▲그 동안 중소기업은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대기업의 보조자적인 역할에 그쳤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21세기 지식 정보화 시대를 맞아 기동성과 유연성이 뛰어난 중소기업은 이제까지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에서 탈피, 우리 경제의 핵심 주체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과 창의적인 벤처기업은 우리 산업의 구조를 고도화함으로써 산업의 역동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제공하게 될 전망입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중소·벤처 기업의 창업 열기를 지속시켜 나가면서 성장 인프라를 확충해 나간다면 21세기에는 이들 기업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리=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