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버전<19>
제품의 홍보 책자와 광고 문제를 놓고 나는 아내와 상의하였다. 대충 계산해 보니 약 1억원의 돈이 필요했다. 직원들의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계속 밀리고 있는 형편에서 갑자기 1억원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문제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빌릴 만큼 빌려서 부채가 밀려 있는데다 담보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결국 사채를 빌리는 일인데,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신의 처가 쪽에 이야기해서 한번 사채를 빌려봅시다.』
며칠 후에 아내가 말했다.
『외가 쪽에 당고모(아버지의 사촌 여동생)라는 분이 있어예. 돈이 좀 있지에. 그런데 그 분이 우알라꼬 당신 태어난 생년월일과 시간을 적어 오라카는 거에.』
『하하하,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오라는 것이 아니고?』
『사주를 볼라카는가 봐에.』
『까짓 거 적어 주지 뭐. 밑져야 본전이니까.』
사주를 적어달라고 해서 별 사람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빌려주는데 그 사람이 실패할 운세인지 아니면 성공할 운세인지 점쳐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사주를 보고 나서 즉각 1억원을 빌려주었다. 사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좋게 나왔기에 빌려주었을 것이다.
나는 즉시 카탈로그를 만들고 신문에 광고를 시작했다. 경제 일간지와 전자신문에 광고를 하였다. 광고료가 워낙 비싸서 종합일간지에는 광고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사업은 일반 대중들보다 기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효과면에서 경제지에 치중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사방에서 문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문의가 오면 먼저 카탈로그를 보내주고 다시 기술자가 가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작업을 하였다. 흥업전자와 같이 내가 직접 설명회를 하기에는 그 수가 많아서 설명회 전담반을 만들어 운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단번에 3억원의 수입이 생겼다. 직원들의 밀린 임금을 청산해 주면서 증원하였다.
마치 병목 현상을 일으키면서 막혔던 것이 일시에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93년 7월에 PCMS 5.3 버전이 과기처 장관이 주는 장영실상을 받았다. 우수 신기술 개발품에 주는 상이었는데, 동시에 정부로부터 인증을 받는 KT마크를 받았고, 이 제품을 곧 미국 ISP사와 대만의 J&J사에 수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