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둔의 결과....이현덕 논설실장 dlee@etnews.co.kr

영국의 역사가인 E H 카는 『성공은 근면과 지혜의 보수지만 실패는 나태와 우둔의 처벌』이라고 말했다. 한탕주의는 우둔의 결과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의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한테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 특히 한탕주의가 알게 모르게 판치는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우리 주변에 이같은 우둔의 반면교사들이 등장했다. 인터넷을 통한 주식 사기공모를 한 일부 벤처기업들이 그 중의 하나라 하겠다. 인터넷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고 인터넷을 통한 주식공모가 인기를 끌자 틈새를 노린 사기수법이 등장한 것이다. 그동안 인터넷상에서 허위사실 등을 앞세운 다양한 형태의 위법행위가 적지 않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이번에 금융감독원의 조사결과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근면과 성실 대신 한탕주의로 목돈을 만지고자 하는 사이비 벤처기업인의 잘못된 욕심이 이제 가속이 붙기 시작한 벤처산업의 발전에 일조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고 늘어진 셈이다.

정보장벽을 허물어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고 해 흔히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이 사기의 도구로 이용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나타난 이들의 주식 사기수법은 특별한 게 아니다. 투자자들이 다소 귀찮더라도 해당 기업의 사업내용이나 기업의 재무구조 등을 확인해 투자 여부를 판단하면 사전에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묻지마 투자에 편승, 무조건 투자해 손해를 본 사람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상대방한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의 사기수법은 회사의 실적을 과대포장해 투자자들을 유혹하거나 유명 회계법인의 이름을 도용해 주식을 공모했거나 공모를 사모로 위장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런 유형의 사기수법에 피해를 본 투자자가 더 있으리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그런데도 국민 3명 중 1명은 주식계좌를 갖고 있고 5명당 1명은 현재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니, 코스닥시장의 활황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지식기반 구조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벤처정신이 본래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산업이 코스닥시장의 활황과 맞물려 국민에게 한탕주의가 판치는 투기장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벤처기업의 특징이라면 기술력과 모험심, 창조정신을 들 수 있는데 이런 정신은 내팽개치고 대신 투기심으로 가득차 한탕주의에 몰두한다면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더욱이 기술력도 없는 기업가가 벤처라는 포장 아래 사실과 다른 내용을 유포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면 그것은 한탕주의식 사고의 발로인 셈이다. 이런 사람들의 성공담이 회자되면 기술력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에 도전해 성공하기보다는 정부의 벤처산업육성책이나 코스닥시장에 등록해 차익을 챙겨 단기간에 목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흔히 벤처투자의 성공률은 전체의 5% 이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나머지 95% 이상은 실패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벤처기업가한테는 남보다 투철한 사명감과 의지력, 도덕성 등이 요구된다고 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 1월까지 국내 벤처기업수는 총 5212개로 해마다 급증추세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전체의 5% 이내 기업만 성공해 부자의 반열에 오르고 나머지는 말 그대로 별 볼 일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부자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안그래도 벤처열풍은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본의는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계층간의 갈등과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또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고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지 않느냐는 불만의 소리도 들린다.

이제 벤처산업은 한탕주의가 판치는 투기판이 아닌 건전한 투자의 마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 청소작업은 바로 벤처기업인의 몫이다. 그래야 벤처산업이 새시대의 총아로 각광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