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2000>3회-천안공단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1시간여남짓 달리다 천안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천안시 외곽도로를 20여분 더 달려가면, 큼지막한 건물들이 모인 공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반도체장비 제조업체와 산업자동화용 장비업체,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들이 한데 모인 천안시 업성동 제2공단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천안공단에 있는 업체들의 제조라인이 바빠졌다.

2공단으로 들어서는 윗목에 자리잡은 한국디엔에스의 생산공장은 최근 반도체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늘어난 공급물량의 납기를 맞추기 위해 마무리 공정이 한창이다. 몇백평 규모의 클린룸은 곧 납품할 반도체 관련 장비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한경희 기술관리 팀장은 『납품 대기중인 클린룸에 장비들이 꽉 차 있었다. 며칠 전 4∼5대가 반도체업체에 공급돼 빠져나가면서 공간에 조금 여유가 생겼는데 나머지 장비들도 이달중으로 반도체업체의 생산라인에 투입될 예정』이라며 『요즘 밤늦게까지 하루 2·3교대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 있는 미래산업의 공장. 테스트핸들러 생산공장에서는 장비의 부품을 깎는 거대한 CNC의 굉음이 끊이지 않고 옆 라인에서는 장비를 조립하느라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윗층에서는 마지막 테스트를 끝내고 납품을 기다리는 장비들도 꽉 들어서 있다.

이렇게 생산공장이 활발하게 가동되면서 공단의 분위기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경기가 회복되면서 입주사들의 사정도 IMF 이전 수준으로 나아졌다.

IMF때 깎였던 급여도 이미 환원됐고, 보너스도 제대로 지급되고 있다. 특히 올해 사업실적이 지난해의 매출보다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40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직원들 모두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한국DNS의 박창현 사장은 『올해 예상되는 장비수주 물량만 따져봐도 매출 목표치를 훨씬 웃돌 전망』이라며 『최근의 반도체경기 회복에 발맞춰 무엇보다 해외 선진 반도체장비기술을 습득하고 이를 창조해 세계적인 반도체장비를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며 강한 포부를 내비쳤다.

2공단의 중간 길목에 있는 공단매점의 주인은 『지난해 말부터 입주업체들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간식과 음료수 등을 많이 사가고 있다』며 『이것만 보더라도 공단의 경기가 회복된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공단 경기가 활기를 띠면서 문제도 생기고 있다. 한적했던 공단길이 항상 막히는 것이다.

시내에서 공단을 가로지르는 1차선 도로는 출·퇴근 시간이면 차량으로 홍수를 이룬다.

미래산업의 염승수 영업부장은 『입주업체들의 차량은 물론, 방문객들의 차량이 지난해보다 눈에 띄게 늘어 교통이 혼잡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도 생기고 있지만 공단경기가 활기를 띠다 보니 젊은층의 직원들도 천안에서 근무하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테스텍의 정영재 사장은 『회사가 비전이 있고 일할 가치가 있다면 요즘 젊은이들도 거침없이 천안에 내려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도 3년 전 서울에서 천안으로 옮길 때 직원 모두 내려왔다.

2공단에서 천안시내쪽으로 자동차로 5분정도 오면, 외국인 투자기업 전용공단과 3공단에 들어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지의 절반정도가 임대가 안돼 비어 있던 외국인 전용공단도 이달 초 임대가 완료됐다.

외국인 전용공단으로 지정된 천안·광주·평동공단, 전남 대불공단 가운데 처음으로 충남 천안공단에 일본업체들의 입주가 쇄도하면서 가장 먼저 분양·임대가 100% 완료된 것.

총 14만9000평 규모의 천안공단 가운데 미분양된 3만6000평을 임대용지로 전환해 이달 초 신청접수를 마감한 결과 5개국의 11개 업체가 5만여평을 신청했다.

이곳 천안공단은 연간 임대료가 평당 4800원으로 평동공단의 평당 1587원, 대불공단의 평당 1078원보다 높은 편이다.

관리공단측은 천안공단이 분양가격의 이자에도 못미치는 임대료여서 중국과 동남아의 외국기업 전용공단보다 싼데다, 각종 편의시설은 물론 인접지역에 첨단산업체의 밀집 등으로 여타 공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지면에서 유리해 분양·임대가 활기를 띤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미 이곳 외국인 전용공단에는 일본의 세계적인 반도체업체가 투자한 어드밴스트코리아가 무상 임대한 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세계적 발전설비회사인 ABB는 총 5000만달러의 공사비를 투입, 2만평 규모의 공장에 송배전 분야 전력기기 생산라인을 갖췄다.

벨기에의 UM(Union Miniere)도 2000만달러를 투자해 올해 상반기까지 이곳에 2차전지 주요 원재료인 리튬코발타이트 생산공장(4600평 규모)을 건설할 예정이다. 외국회사들의 경우, 한국시장의 성장성이 큰데다 아시아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천안 외국인 전용공단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근접한 3공단에는 이곳의 터줏대감인 삼성SDI(구 삼성전관)을 비롯해 삼성전자 LCD공장이 우뚝 솟아 있다.

그동안 전통적인 「농업 지역」이던 충청지역의 천안공단이 천안공단에 반도체·산업자동화·자동차업체들이 잇따라 둥지를 틀면서 중부권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천안지역은 서해안 중부권지역의 경제중심으로 빠르게 공업화를 추진한 데 이어 요즘은 산업기반이 반도체 중심으로 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부권의 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는 중심 축으로 대덕연구단지와 천안공단을 꼽는 이들이 많다.

또 충북 청원·음성공단과 경기도 평택·안성·송탄공단으로 이어지는 산업벨트의 허리 역할을 하는 양상이다.

관리공단의 한 관계자는 『천안지역에 입주한 기업들의 상당수가 반도체·자동차·자동화장비 등 고부가가치형 첨단산업으로 이 일대의 산업구조를 첨단산업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공단은 고속도로와 경부고속전철을 끼고 있는데다 삼성전자 LCD공장과 현대자동차(아산)와 기아자동차 공장(화성)이 가까이 있어 입지조건이 뛰어나다.

테스텍의 정영재 사장은 『천안공단이 물·지진·인력면에서 볼 때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진다』면서 『거름이 풍부하면 어떤 곡식이라도 잘 성장하듯, 국내 반도체산업의 기반을 잘 닦으려면 천안공단의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실리콘밸리의 성공에 스탠퍼드대학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처럼, 천안공단 주위에도 호서대의 「반도체 제조장비 국산화 지역협력연구센터」와 한국기술교육대의 반도체 관련 교육센터가 있다.

이미 호서대를 비롯한 인근 9개 대학 교수, 대학원생들과 한국DNS·미래산업·디아이·케이씨텍·도와 등 30여개 관련 산업체들은 한데 모여 반도체 제조장비 분야에서의 산학연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