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엄용주의 영화읽기> 샘 멘데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

미국에서는 이미 상업적으로나 작품적인 평가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먼저 연극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샘 멘데스 감독의 데뷔작이다. 「아버지를 죽여달라」는 딸의 발칙한 부탁과 함께 카메라는 가족으로부터 패배자로 낙인된 한 중년남자의 모습을 통해 가족과 삶에 대한 단면을 그려낸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로맨틱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뒤틀린 일상이 가져다주는 충격과 불안한 인간의 삶을 엿보는 유머로 치장되며 독특한 색채를 지닌다.

다양한 캐릭터의 인간들이 포진하지만 사실상 「아메리칸 뷰티」의 키워드는 변덕스럽고 불안한 인간의 삶속에 내재된 치유될 수 없는 외로움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행복한 가정으로의 복귀」라는 가식적인 명제를 걷어치우며 때때로 누구나 느끼는 삶의 존재론적 의미를 소박하고 차분하게 그려간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카메라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단절된 가족의 모습을 코믹하고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섞어 담아내지만 그것은 준비된 폭력과 파괴를 느끼게 할 만큼 긴장감을 자아낸다.

하루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샤워를 하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라는 40대 중년남자 레스터. 아침마다 정원의 장미를 가꾸며 최고의 부동산 중개업자라는 성공의 이미지를 꿈꾸는 아내 캐롤린과, 대화마저 꺼리는 딸 제인 사이에서 레스터는 하루하루를 습관처럼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에게 가족이란 그저 자기를 무시하며 지긋지긋한 삶을 강요하는 새장과 다름없다.

어느날 레스터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딸의 치어리더 공연을 보기 위해 농구장을 찾고, 그곳에서 딸의 친구 안젤라를 만난다. 레스터는 안젤라를 본 순간 자신이 잊고 지냈던 열정을 되찾게 되고 새로운 환상을 꿈꾸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치사함을 참아야 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70년대 유행하던 스포츠카를 사들이며 안젤라가 원하는 근육질의 몸매를 만들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레스터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며 짜릿한 에너지를 느끼게 될수록 아내와 딸과의 관계는 점점 악화된다. 딸의 친구에게 욕정을 느끼는 남편과 성공을 위해 바람을 피는 아내, 그런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역겨움을 토해내는 딸의 모습은 옆집에 사는 리키의 비디오카메라에 담기면서 삶과 아름다움에 대한 은밀한 의미들을 토해낸다.

너무 미국적인 정서와 상황설정이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감성적인 이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작품. 그러나 주인공을 맡은 케빈 스페이시와 아네트 베닝의 연기, 완급을 조절해내는 연출력은 높은 완성도와 하모니를 이루며 간만에 캐릭터가 살아숨쉬는 영화를 만난 기쁨을 준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