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인터넷 비즈니스의 화두는 「아이디어와 펀딩」이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돈을 모으면 일단 시장진입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이 흔히 얘기하는 인터넷 비즈니스 1차 모델의 전형이다.
너나 할 것 없이 2차 수익모델 창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요즘 인터넷업계의 화두는 「속도와 사람」으로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른바 「일당백」의 인재(선수)확보와 빠른 속도경영 없이는 아이디어와 펀딩은 사상누각으로 끝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특히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아 보였던 대기업에 인터넷 빅뱅이 시작되면서 「속도와 사람」의 중요성은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의사결정구조가 복잡하고 스타를 키우지 않는 대기업문화가 바로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벤처기업에 뒤지는 이유로 꼽힌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화두는 분명 눈여겨 볼 만하다.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표적 인물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다. 그는 「생각의 속도」라는 저서를 통해 빛의 속도로 생각하라고 강조했다. 빌 게이츠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요즘 웬만한 인터넷기업에 가보면 「실수는 용납해도 실기는 용서치 않는다」는 말을 흔히 한다. 잘해보려고 기다렸다가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실패해도 좋으니 먼저 시작하라는 말로 들린다. 「Shut & Aim」 목표를 정하고 쏘면 그때는 늦었다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고전적 격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온라인주문 체제로 과감히 변신한 델컴퓨터가 기존 유통채널의 강력한 반발로 변신이 늦어진 컴팩을 앞선 것은 속도의 중요성을 일깨운 좋은 예다.
속도의 파괴력은 우리 주변에서도 속속 입증되고 있다. 현재 벤처기업의 시가총액이 기존 공룡기업의 가치를 넘어섰다거나 벤처기업으로의 대기업 인력 엑소더스가 줄을 잇는다는 얘기는 이제 진부할 정도다. 무엇이 이를 가능케 했는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마치 발빠른 벤처기업이 몸이 무거운 대기업을 속도로 자빠뜨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대기업의 경우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사업계획안 자체의 검증, 즉 확실한 품질을 요구하는 경영자의 시간낭비로 결국 시의성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같은 사례가 반복될 경우 제안자는 실망하게 되고 빠른 시간에 아이디어를 인정하고 자금을 실어주는 벤처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 요즘 흔히 보는 일이다.
인터넷시대에는 사업 초기엔 투자비가 적게 소요돼, 사업계획서 작성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인건비의 몇배 정도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반면 최초 사업추진에 의해 확보된 고객을 후발주자가 그만큼 확보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게 특성이다.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시장선점이 강조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올들어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나타난 또하나의 두드러진 흐름은 「인재」 확보경쟁이다. 기업경영에서 인재의 중요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람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는 것은 보통사람 100명보다 「선수」 하나가 경쟁력 있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도 CEO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지는 기분이다.
미국에서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로 GE의 잭 웰치 회장을 자주 꼽는다. 심지어 이사회에서 잭 웰치 회장의 연봉이 너무 많다는 의견도 자주 나온다고 한다. 그때마다 잭 웰치는 『내가 그만큼 벌어준다』고 답변한다. 실제로 잭 웰치가 81년 45세의 나이로 CEO에 취임 당시 130억달러였던 GE의 시가총액은 현재 32배 불어난 4250억달러로 확대됐다. 리엔지니어링·리스트럭처링 등 현대 경영이론의 상당 부분이 그의 이론임을 감안할 때 잭 웰치의 큰소리는 허튼소리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의 성공요인으로 대다수 전문가들이 시대의 패러다임을 미리 읽으며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잭 웰치의 사례는 이 시대 CEO의 덕목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벤처업체를 중심으로 CEO 교체바람이 일고 있다. 펀딩조건으로 경영자 교체를 요구하거나 CEO가 바뀌면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도 자주 눈에 띈다. 많은 연봉을 주고 좋은 경영자를 쓰는 것을 「투자」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정착돼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비하면 「조직」의 중요성을 신봉하는 대기업의 대응은 답답하기까지 하다. 조직으로 움직여온 대기업의 명분은 업무효율성 및 연속성 확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오너에 대한 충성이 우선시되는 재벌기업 속성이 더 컸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스타(선수)를 키우기보다는 조직에 순응하고 오너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을 중역으로 발탁하고 양성했던 대기업들의 문화가 최근의 인재유출을 가져왔고 이것이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대응력을 갖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빛의 속도(Speed of Light)가 아니라 의지의 속도(Speed of Will)」라고 강조한 남궁석 전 정통부 장관의 말이 적절하게 들린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성공요인은 전적으로 의사결정권자의 의지의 속도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