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부설연 5,000개 시대>기업부설연구소 5000개 시대

민간 기업부설연구소가 5000개를 넘어섰다.

기업부설연구소 5000개 시대가 갖는 의미는 새천년 국가경쟁력 확보의 주역이 민간중심이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국가연구개발체계의 대변혁을 예고하는 것으로 의미가 매우 깊다.

더 나아가 정부의 벤처기업육성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기업이 곧 연구소인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기업연구소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이고 기술 없이는 이제 더이상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민간연구소 5000개 시대를 맞아 국내 기업연구소의 현황을 점검해보고 새천년 주역이 될 연구개발 주역들의 각오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기업부설연구소의 설립을 인정해주고 있는 곳은 기업부설연구소들의 단체인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회장 강신호)다.

5000번째 기업연구소의 주인공은 벤처기업인 시스웨이브사의 기업부설연구소.

지난 81년 10월 당시 과기처(현 과기부)가 처음으로 46개의 기업연구소를 인정한 이래 만 19년4개월만의 일이다. 지난해 말 4810개였던게 올들어 22일 현재 211개가 추가로 설립됐다.

지난 60년대 초 산업화 과정에서 공공연구기관 설립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체제는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부출연연 중심의 정부주도형 체계를 갖췄다.

민간산업계가 연구개발 부문에 참여하게 된 것은 70년대 1·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연구개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민간연구소가 출범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 78년 당시 집권자가 300억원 이상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는 제조업체에 대해 기업연구소 설립을 권장하면서 부터다.

지난 81년 46개로 출발한 기업부설연구소는 83년 100개를 넘어섰으며 88년 500개, 91년 4월 1000개를 넘어서면서 설립이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95년 2월 2000개를, 97년 12월 3000개를 각각 넘어섰으며 지난해에는 벤처기업 설립붐과 함께 4000개를 단숨에 돌파했고 1년도 채 안돼 대망의 5000개 시대에 접어들었다. 분야별로는 전기전자분야가 2552개, 기계·금속 1048개, 화학 841개, 식품 94개, 섬유 58개, 기타 407개 등이다.

기업연구소가 처음 인정된 후 1000개를 넘어설 때까지 10년 정도가 소요된 점을 감안하면 순증가를 볼 때 하루에 1.3개 정도가 인정된 결과로 연구소 설립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초기 대기업 중심으로 설립됐던 기업연구소는 80년대 중반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소 설립요건이 완화되고 조세·관세 및 자금지원과 병역특례 등 각종 지원제도가 체계화되면서 급격히 증가, 지난해 말 현재 국가총연구개발비의 80%, 총연구인력의 55%를 차지하는 기술개발의 핵심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82년 단 2개에 불과하던 중소기업형 연구소는 88년 437개로 대기업형 연구소를 추월한 이후 90년대들어 중소기업이 기업연구소 설립을 주도하고 있다.

기업연구소의 연간 설립추이를 보면 지난 96년 415개, 97년 588개, 99년 1170개로 매년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고 중소기업의 비중도 94년 전체의 80.7%, 97년 90.1%, 98년 95.0% 등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97.0%인 1135개 중소·벤처기업의 연구소가 설립됐다.

이는 대기업들의 경우 이미 8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 기업연구소 설립을 완료했기 때문이지만 벤처기업의 연구소 설립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기업연구소 보유 상위 10대 기업을 보면 1위가 삼성전자로 산하에 모두 28개 연구소 8774명의 연구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2위는 현대전자산업으로 16개 연구소에 4005명의 연구원이 근무중이다. 또 3위는 LG전자로 15개 연구소에 3618명이, 4위는 대우전자와 현대자동차로 산하에 각각 8개와 7개의 연구소를 두고 1187명과 2750명의 연구원을 두고 있다. 이 밖에 대우자동차(7개연구소 2029명), 대우통신(7개연구소 734명), 삼성전기(7개연구소 589명), 삼성SDI(7개연구소 590명), LG정보통신(7개연구소 2342명) 순이다.

중소기업들의 연구소 설립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상위 10위권의 연구소들은 대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어 상위 10위권 기업들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 집중도가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소 설립 증가에도 불구하고 IMF관리체제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치고 기술개발비 삭감, 연구활동 축소 등과 같은 대란을 겪으면서 연구원 창업이 급증하는 등 이른바 「연구소 스핀오프(Spin-Off)」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의 벤처기업활성화정책과 맞물려 중소기업형 연구소 설립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가져왔으며 결과적으로 향후 우리경제의 산업구조 고도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산기협 자료에 따르면 최근 설립된 중소기업형 연구소 46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연구소 설립유형을 보면 33.7%가 기존 산업체나 정부출연연 등으로부터 스핀오프된 기업으로 조사됐으며 이 중 모기업으로부터 독립한 경우가 41.9%,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사내 특정사업부가 별도 독립한 경우도 30.3%에 달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창업 1년 미만의 벤처기업형 기업연구소의 경우 지난 91년 11.6%에 불과했으나 97년 21.0%로 높아졌으며 98년 27.1%, 99년 40.5%에 달하고 있다.

결국 중소기업들의 경우 기술집약형 내지는 벤처기업형 연구소 설립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업종별로 보면 전기전자분야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전기전자분야의 연간 신규기업연구소는 90년대 중반까지 40%선에 머물렀으나 97년에는 50%선을 넘어섰으며 지난해 말 현재 65%대에 이르고 있다. 이는 90년대 중반 이후 정보통신 및 정보처리부문의 활성화에 따른 벤처·기술집약형 소규모 기업연구소 급증현상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서울 테헤란밸리에는 지난해 등록된 연구소의 10%에 이르는 109개가 소재하고 있다.

5000개 기업연구소 중 서울지역에 있는 연구소는 1942개로 이 중 17.1%인 332개 연구소가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

한편 기업연구소의 연구인력은 82년 3095명에서 86년 1만명을, 95년 5만명을 넘어섰으며 현재 5000개 연구소에 모두 9만2347명의 연구인력이 활동중이다. 연구원의 학위를 보면 전체 연구원의 58.5%인 5만4063명이 학사출신이며 석사급이 2만5581명, 박사급 4811명 등으로 연구개발이 고도화함에 따라 연구인력도 정예화돼 가고 있다.

산기협이 국내 기업연구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표준연구원상 분석자료에 따르면 남성연구원의 경우 공과대학을 졸업한 학사출신에 경기지역 영상·음향 및 통신장비업체 대기업 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으로 평균 5년9개월의 경력에 34세인 연구원이며 여성연구원의 표준상은 대졸에 경력 4년2개월의 29세 연구원으로 분석됐다.

기업연구소의 양적증가와 함께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도 크게 늘어나 지난해 연구개발 투자규모가 전년대비 14.6% 늘어난 10조원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IMF관리체제에서 탈피, 연구개발 투자를 정상적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경제에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연구소의 양적증가에 맞춰 정부의 지원정책은 제대로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설립된 연구소 46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문연구인력의 병역특례제도에 대한 수요가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기술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 등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전경련이 지난달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확대 요청에 대해 정부가 먼저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에 따른 세제지원 방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기업들 스스로도 지금까지 연구개발 투자가 당장 상품화를 위한 개발기술이 주류를 이뤄 진정한 자기기술과 경쟁력이 취약했다는 점을 되돌아보며 기업연구소 5000개 시대를 맞아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독자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기업들간의 크로스라이선싱(특허교환)이나 공동부품개발, 산학연협력모델의 개발 등은 기업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산기협의 김승재 상무는 『기업연구소가 외형적으로 5000개를 넘어섰다는 것보다는 이제는 기업 스스로 생존을 위해서라도 내실 있는 연구개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이제는 민간기업들의 연구개발을 뒤에서 지원해 주는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