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에서 지구 이외에 생명체가 존재할까.
공상우주영화의 단골메뉴이기도 한 외계인이 살 만한 곳은 가까운 화성보다는 한참 먼 목성의 16개 위성 가운데 하나인 에로파일 가능성이 높다. 에로파의 얼음표면 아래 생명체에 필수적인 물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최근 발견됐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외계인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스스로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점에서 외계인과의 만남을 꿈꿔온 어린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은 에로파의 넓고 넓은 바다에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박테리아와 크기, 구조가 비슷한 미생물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표면온도가 영하 170도인 에로파 표면에서 생명체에 필요한 기본적인 화학반응에 사용될 에너지원이 생산될 수 있을지에 의문이 가기는 하지만 지난해 12월 미국 과학팀이 동남극 빙하속 3950m 아래서 발견한 미생물은 다른 외계에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남극 아래서 발견된 용감무쌍한 박테리아는 수천년 동안 빙하속에서 갇혀 있었으면서도 생명력을 굳건히 유지해왔는데 이는 생명유지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인 물·에너지·탄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빙하의 얼음조직 사이에는 인간의 혈관과 같은 물이 흐르는 지름 천분의 몇 정도의 수맥이 있는데 이들 수맥에는 염분이 축적돼 있어 어는 점이 낮고 유기산이나 개미산, 아세트산과 같은 녹아 있는 산을 농축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화학반응을 거치면서 얼음에 존재하는 몇몇 미생물들에 충분한 양의 에너지와 탄소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몇년 동안 목성의 궤도를 선회하고 있는 탐사선 갈릴레오는 에로파의 표면을 덮고 있는 얼음층 아래 극과 극으로 뻗어 있는 바다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에로파 위성은 태양계에서 지구 이외에 다량의 액체상태의 물이 존재하는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고 구조적으로도 미생물이 발견된 남극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만약 남극의 수천m 아래에 있는 얼음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면 에로파의 얼음에서도 생명체가 발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에로파 위성은 목성에서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수없이 많은 하전입자 덕분에 많은 양의 생물학적 연료를 포함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입자들 덕택에 엄청난 에로파 생물권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양의 유기분자와 산화분자들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탄소는 세포에서 DNA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많은 생명체들이 설탕과 같이 탄소로 이루어진 분자에서 에너지를 얻는데 화학결합에서 탄소 원자들을 떼어내는 데는 어떤 형태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식물과 조류는 대기나 해양으로부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자신의 생체 분자를 합성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에로파의 바다는 두꺼운 얼음층 아래 있어 광합성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빛이 투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없는 대신 목성의 대기에서 에로파로 쏟아지는 고속의 하전입자들이 이러한 에너지를 공급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박테리아 중의 하나인 하이포마이크로비움은 포름알데히드를 유일한 탄소공급원으로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포름알데히드로 살아가는 미생물이 에로파의 바다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가정도 에로파의 얼음 표면에서 형성된 유기분자들과 산화제들이 생물학적으로 바다 속에 있을 때만 제기능을 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지적했다.
에로파의 액체 바다가 있다면 대략 80㎞에서 170㎞의 두께를 갖는 얼음표면 아래 감춰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외계 생명체가 포름알데히드에 의지해 산다면 이 화합물이 두꺼운 얼음층을 뚫고 그 아래에 있는 액체 바다까지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에로파는 지구 생명체의 근원이 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에로파가 태양계만큼이나 오래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목성의 중력에 강하게 잡혀 있기 때문에 지구 생명체의 씨앗을 품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오는 2002년 후에 에로파에 탐사선 오비터호를 발사해 표면 아래에 있는 물을 탐색할 예정이다. 오비터호가 2008년에 에로파에 도착해 탐사결과 바다가 존재한다면 생명체 존재는 물론 새로운 우주작전 무대가 될 전망이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