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368) 벤처기업

최고의 버전<30>

러시아에 가서 사업을 이야기하면 당장 될 것 같다. 그러나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이 예스라고 할 때는 노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예스와 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항상 예스라고 대답하는지 그것은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러시아와 비슷한 이중성이 있지만, 그러나 이 곳은 그런 대로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는 사업의 투명성이나 성과보다도 먼저 인간을 사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하루 이틀에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중국을 수십번 왕래하면서 깨닫게 된 요령이었다.

중국의 양자강 물 관리 프로젝트는 그 계획이 완성되면 국제 입찰의 형식을 취해서 업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의 최대 목표는 바로 그 입찰을 따내는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시범사업에 참가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시범사업의 참여는 국제 입찰을 획득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 될 것이다. 나는 2000년대에 추진될 것으로 되어 있는 양자강 홍수 통제 시스템 사업을 목표에 놓고, 먼저 만주 지역을 지나는 송화강 홍수 통제 시스템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1조원 가량 소요되는데, 그 중에 하얼빈 부근의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소규모 시범사업을 계획했다.

나는 먼저 하얼빈 지방정부와 인연을 맺고 있는 한국의 업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중간에 다리를 놓고 사업을 검토하려면, 이미 닦여진 길을 가는 것이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업체들이 있었지만, 가장 적합한 것은 부동산 업체였다. 중국에서 부동산업은 약간 생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개방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부동산업도 상당히 호황을 이루었다. 중국의 땅은 살 수 없지만, 건물을 매입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리고 땅 역시 일정한 기간에는 빌릴 수 있었다. 대부분 70년을 전후하는 기간인데, 사실 70년간 빌려서 사용하면 사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서울에 본사를 둔 중화토지개발주식회사가 중국 하얼빈에 있는 만토집단과 함께 합작으로 운영하는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곧 그 업체의 한국 대표를 만났다. 그는 사십대 후반의 나이로, 미국에서 유학을 하였고, 한때 재벌 그룹사 회장 비서로 있다가 비서실장까지 지냈다. 그는 그 그룹의 방계회사 대표로 있다가 독립해서 해외 부동산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해외라고 하지만 주로 중국을 대상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