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시스템통합(SI) 시장은 「덤핑 수주」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
SI업체 사장 대부분은 새해 포부를 묻는 기자에게 『매출 규모 확대에 치중하기보다는 부가가치가 있는 사업 추진으로 내실있는 성장을 일궈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까지 이러한 다짐을 실현한 사장들은 별로 없다.
주요 SI업체의 지난해 매출을 보면 선발업체들의 경우 4000억∼5000억원대에서 많게는 1조원을 웃돈다. 하지만 이들 업체의 경상이익은 매출의 5%를 넘지 못한다. 대표적인 고부가치산업으로 꼽히는 SI업계의 경상이익이 일반 제조업의 연평균 경상이익률인 10% 수준에 못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SI업체들이 적자 경영을 면하게 된 것도 불과 2∼3년 전부터다. 더욱이 대그룹 계열 SI업체들의 경우 그룹 관계사로부터 벌어들이는 내부 매출을 제외하면 아직도 대부분이 적자다. 내부적으로는 짭짤한 장사를 하면서도 외부사업에서는 제살을 깎아먹는 덤핑수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업체 기획임원)
중소 전문 SI업체의 가장 큰 불만도 『대형 SI업체들이 그룹 내부에서 벌어들이는 잉여자금을 무차별 덤핑 수주의 총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대기업의 행태는 중소 업체의 시장 참여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전체 국내 SI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논란이 된 「한국형 해군전술 지휘통제 체계(KNTDS) 구축사업」만 하더라도 총 11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670억원에 수주한 S사는 물론이고 입찰시 700억원대를 제시한 L사, 800억원대를 써낸 또 다른 S사 역시 덤핑의 오명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실제 사업추진 과정에서 외국 기술제휴 업체에 지불해야 할 기술사용료와 하드웨어 구입 가격만 고려해도 이익은커녕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SI업체들이 덤핑 가격으로 사업을 수주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SI 업체들의 덤핑 수주에는 한번의 「희생」이라는 확실한 미끼를 던진 다음 더 큰 고기를 낚겠다는 기본적인 전략이 깔려 있다. 단기적으로는 덤핑 수주한 프로젝트를 실제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사양과 구조를 변경한다는 명목으로 투자비를 높여 손해를 메워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S사 영업 임원)
결국 덤핑 수주는 SI업체에 수익률 하락이라는 피해를 안겨줌과 동시에 고객을 희생양으로 삼아 검증되지 않은 기술과 서비스를 실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최근 중견 SI업체들을 사이에는 현재와 같은 출혈경쟁식 SI사업은 더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회사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제일제당 계열 SI업체인 CJ드림소프트의 우광호 사장과 대신그룹 계열인 대신정보통신의 이재원 사장은 『대형 업체들과의 이전투구식 SI사업 대신에 현재 확보하고 솔루션을 바탕으로 특화된 새로운 사업을 발굴, 개척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국내 SI 시장의 전체적인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대형 프로젝트에서의 「덤핑 수주」 관행을 뿌리뽑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며 그 구체적인 대안으로 현행 가격 위주의 입찰제도를 기술과 품질 중심으로 전환하고 정보사업 부문에 대해 충분한 예산이 책정돼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업체들도 단순 경험 축적을 위한 무리한 덤핑수주를 자제하고 자신들이 제공할 기술 또는 제품에 대해 정확한 가치를 평가받는 첨단 산업으로서의 자존심을 하루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게 SI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