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디지털시대 사회와 문화를 상징하는 용어로서 어린이용 블록 장난감 레고에서 유래된 말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확대에 힘입어 후반부터 레고문화, 레고종교, 레고예술, 심지어 레고 사랑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레고문명이란 이 말이 갖는 이미지 그대로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여러 문명이 어떤 모델을 중심으로 융합된 형태를 말한다. 여기서 중심 모델은 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종교와 정치 중립적 가치를 띤다. 개인은 다양한 문명요소 가운데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골라, 자신이 원하는 가치체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성되는 문명들 예컨대 철학, 이데올로기, 문화, 예술 등은 상호 폐쇄적이지 않으며 서로 부딪쳤을 때 움츠려들지도 않는다는 특성을 갖는다. 이미 현지 토착문화와 제국주의 식민통치문화가 뒤섞여 독특한 가치를 창출해낸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의 문명이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레고문명은 여러 개별 문명이 혼합해 이뤄지기 때문에 조화와 상호 관용이 절대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새로운 것을 반가운 것으로, 불안한 것을 하나의 가치로, 불편한 것을 안락한 것으로, 그리고 혼합을 오히려 풍요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곧 레고문명의 실체라는 것이다. 문명비평가들은 따라서 레고문명이야말로 문명 중의 문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레고문명은 철저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때로는 고독하고 때로는 나르시즘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레고(lego)라는 말을 프랑스어 「l●‘●go」(정관사 le와 자아를 뜻하는 ●go를 합친 단어)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라고 하겠다.
<서현진논설위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