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동양그룹 계열 SI업체인 동양시스템즈의 신임 사장으로 취임한 황태인 사장은 직원들의 사내 인사 프로필 검토하며 내심 놀랐다.
『국내 SI업계에서 중견기업에 불과한 동양시스템즈에 이렇게 우수한 인력들이 대거 포진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게 황 사장의 솔직한 고백이다.
실제로 국내 SI업계에는 정보시스템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부터 이 분야에 투신해온 원로급 인사는 물론이고 최근 4∼5년 전부터 본격 영입되기 시작한 석·박사급 이상의 젊은 고급 두뇌들로 가득차 있다.
조금 오래된 97년도 자료지만 「SI산업 고급인력 보유현황」에 따르면 SI업체들의 학사 이상 인력 비중이 전체 보유인력의 90%를 넘고 이중 석·박사급 인력만도 전체인원의 10∼18%에 달해 타업종에 비해 고급두되가 대거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기·전자·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인력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정보처리·관리기술사 인원만도 97년을 기준으로 국내 전체 기술사 인력(400명)의 25% 이상인 100여명이 SI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었다.
하지만 최근 불기 시작한 벤처 열풍과 함께 SI업계의 이러한 우수인력들이 대거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대형 SI업체들의 퇴사율은 10% 수준에 육박하고 있으며 최근 SI업계의 가장 큰 고민거리도 다름아닌 인력 유출 문제다.
『최근 몇달 동안 환송회에 참가하는 일이 거의 일과처럼 됐다. 중소 벤처나 외국계 컨설팅 업체로 자리를 옮기는 동료들이 하루에도 몇명씩 생기다보니 이젠 누군가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L사 J 과장의 말이다. 그 역시 최근 며칠 동안 벤처업체로 이직을 심각히 고려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 국내 SI업계는 전산인력 확보에 초비상이 걸렸다. 실제로 주요 SI업체들은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기 위해 해외인력 유치 캠페인과 상시 채용제도를 서둘러 도입하고 사내벤처제 확대, 인센티브제도 강화 등 더이상의 인재유출을 막기 위한 대비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삼성SDS가 온라인을 통한 상시채용을 시행중이며 LGEDS·쌍용정보통신도 사내 벤처제도를 활성화해 사원들의 사기를 진작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CJ드림소프트는 우수한 인력을 추천하는 사원에게 일정의 성과급을 주는 메리트제도까지 도입했다. 그리고 국내 SI업체들 대부분이 현재 주식시장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인력 유출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SI업계의 이러한 각종 노력들이 우수인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큰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SI업계 내부 인사들마저도 『사내 벤처만 보더라도 누군가가 실패에 대한 위험을 보장하는 전제에서 출발할 경우 벤처기업로서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으며 직원 수가 몇천명에 달하는 SI업체에서 우리사주 역시 큰 이점이 되지 못한다』며 회의적이다.
더욱이 전문가들은 『최근 부족한 전산인력을 메우기 위해 SI업체들이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신입사원들에게 일정기간의 IT 교육을 실시한 후 개발이나 기술지원 분야에 곧바로 투입하는 것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국내 SI업계가 우수한 IT 인력들을 확보하고 이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SI산업의 새로운 역할과 위상 정립을 통해 구성원 개개인이 급변하는 IT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