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한국 기업과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은 현재 구축하고 있는 정보시스템의 궁극적인 목적은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불분명한 목표 의식이 국내 정보시스템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에 만난 외국계 컨설팅 업체 한 임원의 말이다.
정보시스템 구축은 국가·기업 경영의 기본 틀을 수립하는 핵심 사업이다. 그래서 이 사업에 투입되는 비용만도 수십억원에서 최고 수천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내부에는 아직도 기존의 낡은 업무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컴퓨터로 처리하는 일을 전산화로 착각하거나 정보시스템만 도입하면 모든 업무가 자동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SI 수요자와 공급자의 갈등이며 이 문제에서만큼은 SI 사업자들도 할 말이 많다.
SI 실무자들은 「간혹 프로젝트를 수행하다보면 설득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수요자도 있지만 더욱 효율적인 전산업무 플로를 제안했는데도 비전산화 시절의 기존 업무형태를 그대로 흉내내기를 요구하는 수요자도 있다. 이들을 상대하기가 훨씬 힘들다』고 말한다.
또한 『SI 수요자 대부분이 정확한 정보시스템 구축비용 산정기준이 없어 컨설팅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용역에는 비용지급 자체를 꺼림으로써 SI사업자가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새로운 고부가 서비스를 창출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공공부문만 하더라도 정보시스템 발주시 적정규모의 예산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사업자 선정에 최저가낙찰제를 도입, SI업체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게 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기술용역 계약시 적용하고 있는 회계예규의 계약 대상자 근로자 조항(11조)과 감독조항(12조)에 따르면 SI 사업자를 발주자 지시에 따라 일을 완성해야 하는 고용인과 같은 종속적인 지위로 규정함으로써 SI업체의 자율적인 프로젝트 관리와 수행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SI 업계에서는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서는 수요자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통해 정보시스템의 목적과 필요성을 상호 인식하고 이를 근거로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는 문화부터 먼저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포스데이타 김광호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제 SI 업체들도 대외 사업에서의 고객과의 관계를 갑과 을의 종속적인 틀에 벗어나 고객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필수 불가결의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러한 파트너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수요자측보다는 SI 사업자의 노력이 우선되고 이를 통해 고객이 SI 사업자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이들은 『향후 SI 분야의 최대 황금시장으로 기대되는 대외 아웃소싱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기업 고객들과 SI업체들간의 상호 신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설령 SI 수요자가 공급자인 SI 업체의 기술 수준보다 높은 요구를 하더라도 사업자는 당연히 고객이 원하는 수준의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또 비전문가인 수요자가 타당성 없는 요구를 할 때에도 정보시스템 구축자는 전문가의 양심으로 이들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해 최적의 시스템을 공급해야할 책임이 있다.』
최근 대기업을 떠나 인터넷 컨설팅 벤처업체를 창업한 젊은 사장의 이같은 주장은 기존 SI 업체들도 한번쯤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