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 K씨는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 아예 집에 컴퓨터가 없다. 그러나 그는 몇몇 홈쇼핑 인터넷 사이트에 자주 접속하고 가까운 친구와 전자우편도 주고 받는다. 집안일을 끝낸 무료한 오후에는 보고 싶은 영화를 동네 비디오 가게에 나갈 필요 없이 안방에서 골라볼 수 있다.
이처럼 K씨가 컴퓨터 없이 네티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TV를 통해서다. 지상파TV,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기존 아날로그방송들이 디지털방송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TV+컴퓨터」형 영상가전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친숙한 가전제품인 TV에 컴퓨팅이 결합되면서 모니터 대신 브라운관, 키보드 대신 리모컨이 네트워크 접속을 위한 도구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특히 위성을 이용한 다지점 멀티캐스팅 서비스가 일반화하면서 방송과 통신의 경계선이 더욱 모호해지는 추세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도 위성방송을 「일반 공중에 의해 직접 수신되는 것을 목적으로 위성을 통해 신호를 전송하거나 재전송하는 무선 통신업무」라고 정의, 오래 전부터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예고했다. 아예 방송을 통신의 한 수단으로 이해했다고도 볼 수 있다.
위성방송은 단일 방송파로 전국에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지상에 중계국을 건설할 필요가 없는 경제성까지 갖추고 있다. 또 지상의 방송파보다 넓은 주파수 대역을 갖기 때문에 TV 방송 외에 새로운 서비스를 실현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 같은 아날로그 위성방송의 특성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영상·음성·문자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송하고 양방향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위성방송이 방송·통신 통합을 이끄는 선두주자로서 발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위성을 이용한 방송·통신 융합의 척후병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위성방송수신기. 따라서 위성방송수신기도 방송의 디지털화에 발맞춰 단순 방송수신형(FTA:Free To Air)에서 수신제한형(CAS:카스)으로, 다시 대화형 수신기로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위성방송수신기 시장은 일반 제품처럼 제조업체가 일반 시장에 공급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는 형태가 아니다. 위성방송사업자가 복수의 수신기 공급업체를 선정하고 그 업체들로부터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자사만의 콘텐츠와 통신수단으로 시장을 열어가기 때문에 소수 업체들의 과점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따라서 영상신호 전송에서 수신까지가 각 사업자 고유의 암호로 묶여 있는데, 그 솔루션이 「카스」다.
차세대 대화형 수신기도 카스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상업적 성공이 보장된 카스를 사업자들이 공유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카스는 21세기 디지털 방송의 핵심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각종 디지털 방송기술, 관련 세트톱박스(위성방송수신기), 보안산업(암호기술), 소비자 수신인증카드(스마트카드), 디지털 멀티미디어 송수신 등 제반 차세대 방송의 성공여부를 결정할 출발점에 카스가 서 있는 것이다.
만일 빠른 시일 내에 국내 기술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디지털 방송 관련 산업과 기술의 식민지화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카스는 국가보안에 해당하는 암호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외국과의 기술제휴 및 이전도 불가능하다.
결국 국산 카스 개발여부에 방송·통신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