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영화의 대표주자로 조명을 받던 스파이크 리 감독이 만든 최초의 백인영화이자 스릴러.
1976년 뉴욕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샘의 아들」이란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뜨거운 더위와 살인, 섹스와 배신의 코드들을 풀어놓은 작품이다.
스파이크 리의 영화는 대중적이진 않지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이 숨어있다. 사회에 대한 지성인의 시각과 저항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로 그려내는 영상은 물론 풍요로운 음악과 조크 역시, 그의 영민함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잔인한 살인장면과 끈적끈적하게 몸을 휘감는 에로틱한 영상으로 무장한 「썸머 오브 샘」은 기존의 작품처럼 도전적이진 않지만 스파이크 리에 대한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는다. 「썸머 오브 샘」은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스파이크 리의 철학과 노선이 자신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좀더 대중화되고 확장되었음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1970년대의 악몽같은 살인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면서 감독은 독특하고 소외된 캐릭터들을 통해 이기주의와 무모한 편견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 헤어드레서인 비니와 웨이트리스인 디오나 부부는 밤이면 멋진 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이트 클럽을 찾아 나선다. 어느 날 「샘의 아들」이란 이름으로 이상한 쪽지를 남긴 채 잔인하고 대담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된다. 살인범의 주요 타깃은 갈색머리를 한 여자들과 카 섹스를 즐기는 남녀들이다. 마을 사람들은 연쇄 살인마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거나 몽둥이를 들고 순찰을 나서는 등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 나간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바람둥이인 비니는 자신이 살인자를 목격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죽음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그는 외도나 아내와의 변태적 행위 역시 살인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부담감을 지울 수 없다. 1년이 지나도록 살인이 계속되자 비니의 친구들은 마을 사람들을 하나, 둘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추적한다. 그리고 결국 마을을 떠났다가 영국에서 돌아온 리치를 「샘의 아들」로 단정짓고 그를 추적한다. 포르노를 찍고 펑키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다닌다는 것에서 시작된 의심은 점차 꼬리를 물고 커져간다. 리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비니 역시 아내가 집을 나가버리자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친구들의 계획에 가담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르는 「샘의 아들」이 아니라 숨어있는 그를 의식하며, 그와 함께 생활해야 했던 마을 사람들이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상태에서 그들의 일상사는 습관적으로 흘러가지만 살인 사건을 계기로 묻혀있던 작은 문제들이 하나 둘 수면으로 떠오르고 사람들의 관계는 점차 나약한 불안감과 이기심에 휩싸이게 된다. 30여년 전의 끔찍한 낡은 추억을 끄집어 내는 데서도 스파이크 리의 솜씨는 여전히 경쾌하고 즐겁다.
<엄용주 영화평론가 yongjuu@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