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사장님과 유신종 사장님, 웃는 얼굴로 손좀 잡아보시죠.』 마지못해 손을 잡고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러울 리 없었다. 이들의 어색한 웃음은 이번 경영권 다툼이 「타결」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봉합」된 것이며, 더 나아가 응급 봉합을 시도한 배후가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번 골드뱅크 분쟁은 처음부터 석연치 않게 시작됐다. 주총을 불과 나흘 앞두고 경영권을 차지하겠다고 나타난 유 사장. 그리고 그를 밀어준다는 모재벌 관련자. 배후로 지목받는 이 여성 실력자가 전면에 나서면서 이번 골드뱅크 사태의 핵심은 단순한 경영권 다툼이 아니라 「골드뱅크 인수」에 있음이 감지됐다.
이를 말해주듯 이 재벌 관련자는 초기부터 여론을 저울질했다. 그녀는 김진호 사장이 제기한 대기업 배후 음모설에 대해 자신은 이번 일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법적대응을 운운했다. 또 주총 하루 전에는 릴츠펀드 사장이 제안한 골드뱅크 회장직을 수락해 전면에 나설 뜻도 비쳤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되자 불과 몇시간 뒤 자신은 경영권 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아예 그녀가 처음부터 벤처기업 육성자임을 자처하고 나섰다면 국내 벤처기업 문화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었다. 아직도 창업자가 하나에서 열까지 기업을 책임져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창업자와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분명한 새로운 벤처문화를 심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결과는 이도 저도 아닌 최악에 가깝게 끝났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재벌 관계자의 애매한 태도는 그녀의 관심이 벤처기업 육성보다는 「벤처기업의 돈」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이 때문에 벤처기업인들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기업의 자금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될 것이고 회사의 발전보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분확보에 열을 올릴지도 모른다. 결국 벤처는 재벌을 닮아가고 재벌은 벤처를 잡아먹는 식의 악순환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인터넷 사회에서 골드뱅크가 갖는 상징성과 그 파급력을 감안할 때, 골드뱅크식 대타협은 적어도 「윈윈」전략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디지털경제부·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