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2000 사업자 선정을 계기로 국내 통신시장 구조조정이 마무리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통신 전문가들은 IMT2000이 사업자 난립으로 특징지어진 국내시장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한다.
IMT2000 사업권을 따내지 못했다고 해서 기존 통신사업자들이 갑자기 문을 닫는 사태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동전화사업자의 경우 사업권에서 배제되면 간판을 내려야 한다.
특히 무선을 이용한 디지털 종합통신서비스의 성격을 갖는 IMT2000은 그동안 역무별로 세분화됐던 기간통신 사업자들을 완전히 탈바꿈시키면서 종합통신사업자의 등장을 불가피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IMT2000은 제1차 국내 통신시장 구조조정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통신사업자 체제로 완전 재편되는 것은 파워콤의 민영화가 완료되는 2002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통신 구조조정의 가장 큰 변수는 한솔엠닷컴이다. 한솔은 현 이동전화시장 5위 사업자로 독자적인 사업권 획득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여타 사업자와 손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초만 해도 한솔은 전략적 제휴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최근에는 아예 인수합병이라는 빅딜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솔이 누구에게 지분을 매각할지 초미의 관심사지만 이에 대한 책임있는 답변을 해줄 당사자가 조동만 부회장뿐이고 그가 입을 열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일은 각종 시나리오를 대입, 가장 확률이 높은 설을 추적하는 것이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한솔의 지분 매각과 관련한 루머가 이틀에 하나꼴로 만들어지고 유포된다. 「어제는 LG에 팔렸다가 오늘은 한국통신에 넘어가는」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삼성그룹이 보다폰에어터치와 손잡고 한솔을 인수한다는 이야기까지 떠돌고 있다. 게다가 인수 대가로 각 그룹사가 갖고 있는 인터넷 관련업체들을 넘긴다는 구체적인 소문까지 퍼져 한솔을 둘러싼 인수합병에는 웬만한 국내 대형 통신업체들이 총출연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은 한솔을 인수한다고 「알려진(?)」 업체들과 시나리오를 차례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한국통신 인수설. IMT2000을 통해 숙원인 이동전화사업에 직접 진출을 꾀하고 있는 한국통신은 SK텔레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기존 자회사 한국통신프리텔의 가입자로는 성에 차지 않아 한솔을 인수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 출발한다.
당초에는 한국통신프리텔이 한솔과 접촉했으나 올들어서는 본체인 한국통신이 직접 나서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한국통신이 한솔의 인수대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 지분을 넘긴다는 설과 전자상거래를 집중 육성하고 있는 한솔의 의중을 감안, 한국통신하이텔을 함께 넘긴다는 설이 교차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통신과 한솔의 빅딜에 SK텔레콤 지분이 등장하는 것이다. 한국통신으로서는 현금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고 또 논란거리인 011 지분을 처리해서 좋다. 한솔의 대주주, 그 가운데서도 외국인 대주주인 BCI와 AIG는 011이라는 초우량기업의 지분으로 바꿔 탄다는 데서 매력을 느낄 법한 대목이다.
시나리오로는 거의 완벽한 이 가설은 SK텔레콤이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한통이 한솔을 인수하면 자연히 시장 점유율에 변화가 오고 공정위에 계류중인 신세기 인수건도 자연스럽게 해법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눈엣가시 같던 한국통신의 지분도 처리된다.
두번째는 LG인수설. 019의 현 가입자 순위가 4위에 머무르고 있는 LG로서는 덩치 키우기가 가장 급선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정보통신을 그룹의 핵심 역량화한다는 LG는 데이콤과 LG정보통신을 거느리고 있지만 이동전화 부문에서는 고전, 한솔을 인수해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SK가 신세기를, 한국통신이 한솔을 각각 인수한다면 019는 졸지에 중소기업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 한국통신보다는 018 인수에 더욱 적극적이다. LG가 한솔에 제시하는 대가는 LG홈쇼핑 등이 거론된다.
한통과 LG의 인수설에는 IMT2000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가입자가 700만∼1000만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경제 논리가 뒷받침되고 있다.
이들의 인수설은 「확정」 등의 단어를 달고 언론에 보도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삼성과 보다폰 컨소시엄의 018 인수 시나리오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 한때 증권가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가 지금은 잠복중이다.
통신 서비스시장 진출을 포기한 삼성이 장비납품 시장을 고려해 아예 018을 인수하고 전략적 제휴 파트너로 보다폰에어터치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삼성은 한솔 직접 인수 대가로 일정 수준의 현금과 삼성쇼핑몰을 넘겨줄 것이라는 가설이 뒤따른다.
한통과 LG인수설에 비해 신뢰성이 가장 떨어지는 시나리오지만 세계 최강의 이동전화사업자와 CDMA 장비업체의 국내시장 진출이라는 점에서 현실화된다면 엄청난 파괴력이 예상된다.
삼성은 한국통신과의 연계설도 돌고 있다. 한솔이 재계의 라이벌인 LG 품에 안기는 것을 막고 안정적인 장비 납품처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통신 인수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한솔이 비록 삼성그룹에서 분가해나왔지만 어차피 형제그룹이라는 점에서 삼성의 의사가 먹혀들 소지가 크다는 것도 배경이 된다.
삼성은 한국통신이 한솔을 인수할 경우 일정한 지분을 갖고 그 대금은 그룹의 인터넷쇼핑몰 분야를 넘겨주는 소위 3각 빅딜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도 그럴듯하게 나돈다.
문제는 한솔의 선택. 증권가와 업계에서 떠도는 모든 시나리오를 보면 관련업체들이 한솔을 향해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상황이다. 모두가 한솔이 필요하기 때문에 몸이 달아 있고 한솔은 몸값을 충분히 높인 후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솔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수합병설이 언론에 보도되면 발끈, 해명자료를 내거나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루머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지친 표정이다.
하지만 한솔 직원들은 늦어도 올 상반기 안에는 인수 합병이 표면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통신, LG그룹과 각각 접촉한 사실도 순순히 시인하고 있다. 정보통신부 역시 한솔의 인수합병은 시기 문제지 방향은 정해진 것이라며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기업 인수합병은 워낙 극비리에 진행되는 사안인만큼 진행과정에서 이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4·13 총선 전에는 표면화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뿐이다.
아무튼 한솔의 선택은 적어도 국내 이동전화시장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게 되고 인수업체는 IMT2000 사업권 획득을 가시권에 넣게 된다.
하나로통신과 파워콤의 지분 경쟁 역시 IMT2000과 맞물려 통신시장 구조조정의 키를 쥐고 있다. 이 둘은 뚜렷한 주인이 없는 기업이다.
하나로통신의 경우 수치적으로는 LG가 최대 주주지만 경영권을 행사할 만큼의 지분은 못된다. SK·현대·삼성 등과 적절한 지분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하나로에 최근 변수가 생겼다. LG가 장내에서 지분을 매집한다는 소문이 계속 퍼지고 있는 것이다.
발행주식이 2억4000만주나 되는 대형주라는 점에서 장내 매집은 한계가 있지만 정작 그룹사 사이에 지분 경쟁이 벌어질 경우 1%가 아쉬운 상황이 초래되기 때문에 LG의 행보는 음미할 만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하나로통신에는 SK텔레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무선의 왕자면서도 유선계 사업자와 인터넷 부문이 약해 종합통신사업자로 부르기에는 어딘지 허전한 SK텔레콤이 하나로를 인수한다면 곧바로 한국통신과 경쟁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011은 지난해 하나로통신 지분 경쟁이 벌어졌을 때 현대가 보유한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 실무진에서는 계약 일보직전까지 밀어붙였으나 최고위층 지시로 철회한 바 있다. LG가 하나로 지분을 늘려나가는 데는 SK텔레콤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나로는 나스닥에까지 상장한 상태라 당장 경영권 경쟁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IMT2000을 앞두고 지분 경쟁이 재연될 소지는 있다.
파워콤의 경우 잠재력이 워낙 커 주인이 등장하는 순간 국내 통신시장 구조조정은 완결될 것이다. 물론 초기 지분매각은 10% 안팎의 동일인 지분한도를 적용, 한전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지배주주가 나타날 수 없지만 민영화 요구가 거센 상황이어서 IMT2000 서비스가 상용화되는 2002년에는 경영권을 확고히 하는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