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계획과 달리 시제품을 4개월 정도 늦게 출시했습니다. 조립공장(Fab)에서 칩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2년여에 걸쳐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용 ASIC을 개발한 A사 사장 K씨는 『국내 Fab 사용의 지연이 제때 상용화를 가로막는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삼성·현대 등 국내 수탁생산(파운드리)업체들이 대만업체들에 비해 일의 진척속도가 느리다고 지적한다. 국내 D램 공정 기술에 기반을 두고 파운드리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비메모리 제품 위주로 서비스해온 대만업체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파운드리서비스에 관한한 미세공정 기술 수준도 국내업체가 뒤떨어진다. 대만업체는 의뢰해온 ASIC칩을 0.25미크론(1미크론은 100만분의 1m) 공정에서 생산하고 있으나 국내업체들은 0.35미크론을 적용한다. 대만업체들은 올해부터 0.18미크론 공정을 적용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국내 Fab 이용료는 대만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비싸다.
다만 국내 FAB을 사용할 경우 접촉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은 공동 개발시 더욱 극대화된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 국내에서 칩을 만드는 데 걸리는 기간은 대만업체에 맡겼을 때에 비해 한두달 더 걸린다.
국책 연구기관이나 대학이라고 나을 바 없다. 오히려 미흡한 생산기술 노하우로 고난도 기술을 적용한 칩 생산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결국 파운드리 전문 서비스를 하는 Fab의 설립이 시급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으로 모아진다.
황기수 반도체산업협회 ASIC 담당 이사는 『고비용과 고기술을 동시에 해결할 파운드리서비스 전문 Fab을 하루빨리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당국과 ASIC설계사협회(ADA) 등이 최근 파운드리서비스 전용 Fab 설립을 잇따라 추진하는 것은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취약한 Fab 생산기반만이 문제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보다는 수요처인 시스템산업을 고려한 연구개발이 미진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노재성 현대전자 수석연구원은 『개발과제 선정 단계부터 수요자인 시스템업체의 요구에 맞는 프로젝트를 선택,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개발과정에서 시스템업체와 연구결과물을 공유해야 사업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개발업체간 정보교류가 차단된 것도 문제다. 「실패한 기술」로 판명됐는데도 이를 알지 못한 채 개발하려다가 중도포기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백우현 LG종합기술원 책임연구원은 『수행과제에 따른 각종 정보를 실수요자가 수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료를 표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인구기자 cl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