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이제 모든 기업에 현실로 다가왔다. IT기업에는 기업의 주 아이템으로, 비IT기업에는 생산성을 높이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경영시대가 도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경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속시원하게 대답하는 경영인은 별로 없다. 그저 「시대가 변했으니까」 「인터넷이 중요하니까」라는 막연한 환상이 비IT업계 경영자들을 인터넷의 감옥에 가두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IT업계의 디지털경영은 커뮤니케이션이면서 속도다. 기존 아날로그 경영이 단절된 대화속에 수직적 명령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디지털경영은 수평적 결합속에 개방된 대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또한 의사결정 과정이 기안과 동시에 해결되는 속도의 경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ABC방송이 미국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성공적인 경영자라고 칭찬한 바 있는 컴퓨터어소시에이츠(CA)의 찰스 왕 회장은 기업 내부에서 최고경영자(CEO)와 기술담당최고중역(CIO)의 대화단절이란 표현으로 이를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절대 대화하지 않는다. 단지 말을 할 뿐』이라며 CEO들은 CIO를 「기술쟁이」로, CIO들은 CEO를 시대에 뒤떨어진 「무식쟁이」로 각각 대한다고 강렬하게 비난했다. 아날로그 경영에서 대화의 부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디지털경영에서는 다르다. 정보화 담당부서나 담당자를 업무의 한 부서나 쟁이 정도로 취급하기보다 경영 전반에 필수적인 전략부서나 경영전략가로 바라봐야 한다.
◇디지털경영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과 속도
또 디지털 경영체제란 한마디로 「속도」와의 전쟁체제라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GE의 잭 웰치 등 앞서가는 기업들의 리더는 조금씩 다른 표현과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디지털경영의 화두로 한결같이 속도를 강조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기업의 성패를 「디지털화된 신경망」을 갖추고 시장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느냐는 것으로 압축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기업은 시장변화 정보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신속하게 반응하는 「반응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단정했다.
「웰치즘」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선진경영 기법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잭 웰치 회장도 『1, 2위가 아닌 사업에서는 손을 떼라. 경영의 생명은 속도』라며 「넘버원 또는 넘버투」 전략을 강조했다. 속도의 중요성에서 두 거인의 생각은 일치했다.
지난해 한국통신프리텔·마이크로소프트·퀄컴은 총 6억달러 규모의 제휴를 맺은 바 있다. 당시 제휴업무를 책임졌던 협상 실무자는 『무엇보다 놀란 것은 세계적인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 과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거금의 외자를 유치했다는 사실보다는 그 과정에서 외국 거대기업들이 보여준 업무 처리속도에 놀랐다는 것이다. 그는 『몇단계를 거쳐 오르내리는 국내 기업들의 상명하달식 의사전달 체계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들을 따라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고 고백했다.
최근 외국에서 투자를 유치한 한 벤처기업의 사장은 『3개월, 늦어도 6개월이면 시장 지배구조가 바뀔 만한 시간이다. 그런데 국내 대기업들의 의사결정은 3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그렇게 오랜 기간을 숙고하고도 위험부담은 오히려 벤처기업에 떠넘기는 「리스크 제로」 결정을 내린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실험정신과 인간 중심의 기업문화 창출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요인은 업무담당자의 소신있는 판단과 이를 당연히 생각하는 조직의 체질도 한몫 한다. 이제는 기업간 업무연락을 최고담당자간 전자우편으로 주고받는 시대다. 이러한 때 몇단계를 거쳐 비서를 통해 결재서류를 전달받는 기업풍토에서는 경쟁력 확보를 기대할 수 없다. 소신있는 업무처리를 위해 담당자의 전문성 확보와 함께 책임과 권한을 충분히 부여하는 최고경영자의 마인드 변화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는 또 디지털 경영체제란 인간 중심의 경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함께 디지털 경영시대의 경쟁력은 정보공유를 통해 뭉쳐진 새로운 지식집단이 좌우할 것이다. 이 지식집단은 첨단 IT인프라를 기반으로 정보를 공유해 전문성을 키워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소신있는 의사결정이 가능한 지식근로자로 구성된 것이다. 지식집단으로 변신한 신정보군단에 의해 산업사회의 거함들이 무참히 격파당하는 시대가 바로 디지털 경영시대, 즉 지식사회인 것이다.
비IT기업에 디지털경영은 단지 인터넷 비즈니스 사업을 신설하거나 벤처기업에 대한 지분투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고경영자의 인식전환을 필두로 벤처기업과 같은 리스크를 안고 도전하는 과감한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전직원이 경영인이라는 마인드를 갖고 정보를 공유하며 전문지식을 키워야 한다. 대화의 창구가 열려야 하고 가족과 같은 디지털 기업문화가 생성돼야 한다.
최근 디지털경영에 대기업을 비롯해 비IT기업들이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이들 기업은 저마다 독특한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인터넷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있다.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이들 기업이 추구하는 전략은 기존 아날로그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디지털로의 전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분사와 사업부 독립, 사내벤처, 팀제, 권한이양 등. 이를 중심으로 수평적 관계개선을 통한 문화창출은 디지털경영에 맞추기 위한 공룡기업들의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들 디지털경영으로 잰걸음
SK는 회사내 복합네트워크사업부를 신설하고 전자상거래 및 IT비즈니스를 결합한 개념의 종합인터넷사업인 「OKSK.COM(가칭)」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코오롱은 코오롱상사 기획팀내 인터넷사업 전담 태스크포스팀(TFT)을 결성, 그룹 차원에서 인터넷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신세기통신 지분을 코오롱상사로 이전한 것을 계기로 정보통신사업에 치중한다는 계획 아래 외자유치 등 자본상태가 호전되는 대로 인터넷사업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LG는 그룹 차원의 통합인터넷사업을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계열사별로 전자상거래 사업을 벌이는 등 인터넷사업이 분산 추진돼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LGEDS시스템을 중심으로 인터넷사업을 통합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LG는 이를 계기로 각 계열사간 인터넷 비즈니스 노하우와 정보를 공유해 계열사간 비즈니스 대통합을 추진할 계획이다.
삼성은 이미 삼성물산이 미국 AOL 및 Z몰사와 협력해 인터넷사업에 앞장서고는 있으나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S 등 그룹 계열사간 비즈니스의 시너지효과를 얻기 위해 인터넷사업을 종합적으로 추진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현대·대우 등도 주력기업을 앞세워 기존의 각 계열사 위주의 인터넷 비즈니스와는 달리 그룹 통합적인 개념에서의 인터넷사업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