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는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일일 가격제한폭을 정해 놓고 있다. 때문에 아무리 널뛰기 장세속에서도 거래소는 15%, 코스닥시장은 12%라는 범위내에서만 주가가 움직인다.
이에 비해 제3시장은 매도·매수 측 가격만 일치하면 어느 가격에서나 거래가 가능하다. 10원에 거래되던 주식이 순식간에 100만원짜리 주식으로 돌변하곤 한다. 이같은 사례는 지난달 29일 제3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된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주가가 급변하는 데 대해 일각에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인위적인 주가조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첫 거래가 있은 지난달 29일부터 코스닥증권 장외시장팀의 유승완 팀장은 『주가 급락이 너무 심하다는 점에서 누군가 주가를 조작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부분』임을 인정했다.
◇사례1=지난달 31일 현재가가 10만원이던 A사는 장이 열리자 마자 10주가 10원에 팔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주가 100만원에 팔렸다. 이어서 주식은 다시 70원, 800원 순으로 매매됐다. 숫자를 잘못 입력했다고 믿기에는 너무 차이가 크다. 오히려 변칙증여나 사전상속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매매 당사자간에 가격 담합을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높다.
◇사례2=지난달 31일 B사는 갑자기 1주가 100만원에 거래됐다. 같은 날 C사의 경우 1주가 99만원, D사가 200만원에 체결됐다.
이렇게 간혹가다 고가로 1주가 체결되는 것은 기업 관계자 측이 주식을 갖고 장난칠 가능성이 높다. 제3시장 모의투자를 실시한 사이버쓰리스탁 현용철 대리는 『기업 관계자들이 주가를 상향화하기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높은 주가를 유지함으로써 보다 많은 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례3=한 주나 두 주씩 분할 주문하는 경우도 주가조작의 가능성이 높다.
현재가가 6만원대였음에도 불구하고 11만원에 1주를 매매하고 이 가격을 현재가로 형성, 11만1000원 1주, 11만2000원 1주, 11만3000원 등등에 호가를 불러 이 가격대가 실제 거래되는 가격인 것처럼 현혹시키고 있다.
일종의 호가단위를 형성한 것처럼 보이도록 현재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으로, 초보자들이나 시장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킬 수 있다. 매수자는 가격을 올린 다음 치고 빠지게 된다.
◇감시체계 미흡=제3시장의 파행적인 가격운영에 대해 일각에서는 제3시장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꼬집고 있다. 미국의 장외종목거래시장인 OTCBB의 경우 일종의 시장중개인이 기업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적정 주가내에서 주문을 내도록 돼 있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일반투자자들이 직접 주문을 내도록 하기 때문에 묻지마투자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제3시장의 주가조작 의혹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막을 길이 없다는 데 있다. 증권 관계자들은 제3시장이 공식적인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공시제도를 운영하거나 불공정거래를 감리하는 등 감시체계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한 목소리다. 현행 증권거래법상 제3시장을 감시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주가조작을 합법적인 것으로 묵인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투자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불건전한 시장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다면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고 이는 결국 커가야 할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절한 투자자 보호장치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