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오는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은 진심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로써 그동안 갖가지 문제로 부진을 면치 못했던 전자정보통신분야에 대한 협력이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전자정보통신분야의 협력이 촉진될 것이라는 예상만 봐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갖는 의의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세월동안 남북의 극심한 갈등과 대립속에서도 이 분야에서의 협력은 꾸준히 추진되어 왔다. 지난 96년 삼성전자가 나진선봉 지역에 통신센터를 개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우전자와 LG전자의 TV생산라인 설치, 전자조합의 임가공계약 체결, CC마트의 486 중고PC 기증, 현대 개인용컴퓨터 조립라인 평양 설치, 새한정보시스템, 북한제 바둑프로그램 「은별」수입 판매,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공동개발 IMRI사 PC모니터 30만대 공급 등 갖가지 사업이 계속됐다.
지금도 대기업을 비롯해 중소기업들의 대북사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우리 기업들의 대북사업이 「장밋빛 청사진」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떠한 돌발사태가 발생해 남북정상회담이 당초 계획대로 열리지 못한다는 가정도 해볼 수 있으며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린다 하더라도 과연 북한이 우리 기업들에 빗장을 활짝 열어 놓을지도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급히 김칫국부터 마시기보다는 앞으로 예상되는 남북경제교류를 위해 치밀한 사전 준비작업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우선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을 하나의 사업대상으로만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북한과의 교류가 국내 기업들이 이윤창출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할 경우 한민족이 원하는 남북협력사업을 실현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수차례 북한을 방문한 한 업체 사장은 단순히 북한을 하나의 생산기지나 시장으로만 여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남북협력이 북한의 산업발전을 전제로 남과 북이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의 대북사업은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를 이용한 단순한 임가공기지로 활용해 왔다. 이렇게 해선 제대로 된 협력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정치적인 갈등이나 이해에 의해 갈라서기 쉽다. 이제 북한을 단순한 완제품 조립공장으로 활용하기보다는 폭넓은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 기업으론 경쟁력이 없는 잉여생산설비를 북한으로 보내 현지에서 부품까지 모두 생산하는 그런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첨단 기술교육을 실시해 본격적인 기술협력시대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당장의 이익추구 때문에 갈등을 빚기보다는 미래의 시장을 키워 양쪽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발전을 전제로 한 우리 기업들의 대북사업은 곧바로 통일이후 예상되는 엄청난 분담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투자라는 점을 인식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10여년 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국가였던 독일이 통일된 이후 매년 서독지역 GDP의 4∼5%가 구 동독지역으로 흘러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더구나 구 동독이 당시 세계 제 10위의 공업대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북이 통일될 경우 우리측이 지불해야 하는 통일부담금은 거의 천문학적 수치에 이를 것은 분명하다.
실제 정부나 가가 연구기관들도 통일이 됐을 경우 향후 10년간 매년 남한 GNP의 7∼8%에 상당하는 자금을 북한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금액은 우리 국방비(GNP 3%)의 거의 두배에 이르는 수치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고 통일이 되면 지출하지 않아도 될 분단비용 또한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들의 북한에 대한 지원은 소모성 투자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점에서 볼 때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전자정보통신기업들은 대북사업이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특정제품의 임가공 생산기지로 만들기보다는 첨단기술지원을 통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성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결국 우리 전자정보통신업체들의 대북사업의 이해득실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