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2000의 디팩토

「동기(cdma2000)냐 비동기(WCDMA)냐.」

최근 일본과 유럽 일부 국가 등에서 차세대이동통신 「IMT2000」 사업자 선정이 본격화되면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복수표준으로 채택한 두 규격 중 어느 쪽이 시장경쟁 속에서 주도권을 잡는 「사실상의 표준(디팩토 스탠더드)」으로 자리잡을지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현행 디지털 휴대폰에서 디팩토 스탠더드는 특히 제조업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예로 독자 방식 PDC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서비스를 개시한 일본에서는 PDC가 지역 규격으로 전락한 가운데 NTT도코모가 단일 지역으로는 세계 최대 사업자로 성장했지만 단말기 업체들은 일본 이외 시장에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는 노키아와 에릭슨은 유럽통일 규격 GSM이 전세계의 약 80% 지역에 보급되며 디팩토로 자리잡은 데 힘입어 모토로라를 능가하며 세계 단말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IMT2000은 현행 휴대폰과는 차원이 다르다. 동영상 전송에 인터넷까지 융합됨으로써 제조뿐 아니라 서비스까지 포함하는 통신 전반에 새 질서를 몰고올 수 있기 때문에 21세기 최대 이슈로 주목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디팩토의 향배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현재는 무게 중심이 WCDMA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핀란드를 시작으로 스페인, 영국 등으로 사업자 선정 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유럽에서는 GSM을 발전시킨 방식으로 기존 네트워크를 운용할 수 있다는 이점 등으로 WCDMA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3개 사업면허를 교부하는 일본에서도 WCDMA가 대세다. 내년 3월 세계 최초의 WCDMA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인 도코모가 사업면허를 신청했고, 브리티시텔레컴(BT)의 출자를 받는 일본텔레컴도 WCDMA을 채택한다. 당초 cdma2000 서비스를 계획해 온 DDI-일본이동통신(IDO) 연합도 WCDMA로 돌아설 움직임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WCDMA 단일 표준 지역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동남아시아나 중동, 아프리카 등 다른 GSM 지역도 설비투자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WCDMA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추세라면 따라서 WCDMA가 2세대 디팩토인 GSM과 일본 PDC를 기반으로 차세대 이동통신의 디팩토가 될 가능성이 크다.

cdma2000 채택 움직임은 미미하다. 이 규격의 종주국으로 보급이 기대되는 미국의 경우 정부가 사업자를 별도로 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시장경쟁 속에서 주도 규격이 가려지게 됐다. 게다가 미국은 아날로그 방식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디지털 서비스도 CDMA, TDMA, GSM 등 여러 기술이 혼재돼 있는 등 휴대폰 환경이 유럽이나 일본에 크게 뒤져 있어 2년 이내 IMT2000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고 cdma2000 쪽에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반이 되는 CDMA가 서비스 지역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고, 특히 세계 최대 통신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는 중국에 본격 진출하게 된 것은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cdma2000이 앞서 나가고 있는 WCDMA를 따라잡아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지는 극히 미지수다. 중국의 경우도 이미 GSM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cdma2000를 보장해주는 상황이 아니다.

사업자들은 축적 기술 및 노하우, 투자 부담 등을 고려해 IMT2000의 진로를 타진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GSM·PDC=WCDMA」 「CDMA=cdma2000」의 등식에 맞춰 방향들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디팩토의 무게 중심은 간과할 수 없는 변수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의 CDMA 서비스 업체 DDI-IDO 진영은 그 동안 표방해 온 cdma2000에서 WCDMA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cdma2000으로 보장받는 설비투자 삭감 등의 이점보다는 디팩토로 유력시되는 WCDMA를 선택함으로써 새로 얻게 되는 이득이 더 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새 결정은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다른 CDMA 서비스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