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두뇌 엑소더스>인력 이동의 실태(상)

최근 2∼3년새 첨단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면서 이들 업계로 옮겨간 연구인력을 둘러싼 논의가 분분하다. 중소 벤처기업행 연구인력들이 전직하면서 생길 영업비밀 유출의 우려가 제기되면서 「부당 스카우트냐」 「직업선택의 자유냐」 하는 논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가 미디어링크, 넥스컴 등에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인력유출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중소벤처기업행 인력 유출이 대기업에 사활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력이동의 실태와 부당스카우트 여부, 대응책 등을 살펴본다.

◇인력이동의 현황=삼성전자의 직원 4만명 가운데 지난해 중기벤처행 등으로 자리를 움직인 인력은 3%에 이르는 12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정은 첨단직종이라고 일컬어지는 정보통신부문에서 특히 심하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LG정보통신, 현대전자 등의 기업들도 지난해와 올해 500∼600명씩의 인력 이동을 겪으면서 인터넷 정보통신장비, 이동전화기 분야 연구원을 줄줄이 충원해야 되는 애로를 겪고 있다. 첨단 벤처기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부쩍 고민을 하고 있는 기업군은 다름 아닌 대기업이다. 이들은 중소기업들이 투자연구비의 부담 등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던 기술인력 양성 및 개발, 굵직굵직한 국가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면서 산업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IMF사태의 직격탄을 넘기자 벤처기업이라는 복병이 나타나 대기업에 인력유출이란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신흥 벤처기업들이 엔젤들로부터 자금을 얻는 길이 열리면서 연구에 전력할 수 있게 됐다. 대기업의 장점으로 꼽혀왔던 「안정된 직장」보다도 막대한 스카우트 비용과 스톡옵션 그리고 화려한 성공을 내세운 연구원들의 중소벤처기업행이 경제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누가 나가는가=벤처창업에 따른 인력난은 특히 첨단 정보통신 직종에서 심각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들 업계에는 최근 몇년새 연구인력이 일년 내내 이동하고 늘상 채용하는 분위기가 관행처럼 되어 버렸다. 인력이동은 주로 대기업의 3000만∼4000만원대 연봉의 4∼5년차 고참 대리나 과장급 연구원이며, 통신 및 SW분야의 연구원 등 고급 인력이 주류를 이룬다.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동종 대기업, 심지어는 외국기업으로 줄줄이 옮긴다. 삼성전자의 이동통신 관련 인력 수십명이 지난 한해동안 노키아코리아에 집단으로 옮겨간 것은 그 단적인 예다. 대기업으로서는 4∼5년간 일하던 연구인력이 연구성과와 지적재산의 성과를 바탕으로 벤처로 가는데 대해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임금 가이드라인」 때문에 함부로 임금을 올리거나 대형스톡옵션 등의 「당근」도 제시할 수 없다. 「안정」은 있지만 뚜렷하고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대기업 직원들은 이같은 상황속에서 줄줄이 떠나고 있다. 물론 특수한 예이기는 하지만 대우통신에서 어필텔레콤으로 옮기기로 예정된 연구인력 7∼8명이 모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역스카우트 현상도 발생했다.

◇대기업 타격은=대기업들이 퇴사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거론하는 영업비밀보호대상의 내용은 수십년동안 쌓아왔던 영업노하우와 기술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의 경험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이번 소송을 통해 밝혔듯이 전직 삼성전자 직원들이 벤처기업으로 이동하면서 영업프로세스를 사용하며, 유사기술을 그대로 경쟁 벤처업체에 이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삼성전자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그대로 반영할 수도 있지만 한달이 멀다하고 기술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계의 상황을 본다면 어불성설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업종 역할 분담이 일정한 획을 긋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중소기업이 대기업 출신의 연구원 몇명을 유출시켰다고 해서 사업자체가 위협받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다. 따라서 삼성의 이번 가처분 소송은 소송도 소송이려니와 더 이상 인력 유출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고민끝에 나온 극약처방이라는 쪽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