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용 논설위원 jypark@etnews.co.kr
닷컴(.com)으로 끝나는 이름이 갑자기 눈에 많이 띄고 있다. 인터넷 신설업체들은 물론 기존 업체들까지 이름을 바꿔 닷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인터넷시대의 또 다른 변화다. 사실 닷컴이라는 이름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는 작명의 기본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이 이름이 유행하는 것은 자사 홈페이지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편이거나 인터넷 관련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름을 바꾸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수년 전에 사람이름 바꾸기가 이슈가 되던 때가 있었다. 중년층 이상 국민 가운데는 귀한 이름을 지으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오랜 관습에 의해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이름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많다. 특히 여자들이 많은 집안에서는 아들을 바라는 마음에 「말」자나 「끝」자를 딸에게 부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남자에게도 동물을 지칭하는 이름이나 신체적인 특징이나 특정 부위를 지칭하는 이름 등 불리는 것만으로도 위축되게 하는 이름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이름들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동안 단순히 이름 때문에 무릅써야 했던 갖가지 불이익이나 자격지심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것이다.
인터넷시대에 닷컴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이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시대적 변화가 반영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부류의 이름은 인터넷을 배경으로 하는 사업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굳이 인터넷 관련사업을 한다고 밝히지 않아도 이름만으로 인터넷업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꾼 많은 업체들이 높아진 인지도를 실감하고 있으며 일부 상장업체들은 주식가치가 높아지는 재미를 보고 있기도 하다.
기업들의 이름이 내면의 것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관련업체들의 닷컴류로의 이름 바꾸기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사업 주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거나 일부 부가적인 사업이 인터넷과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닷컴류의 이름으로 바꾸는 기업들도 있다. 통신서비스 업체 가운데 한 업체가 얼마 전에 닷컴 붙인 이름으로 대외적인 명칭을 바꿨다. 이 업체는 무선 이동통신이 주업종일 뿐 인터넷비즈니스와는 큰 관계가 없다. 인터넷 관련 사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통신서비스에 인터넷 서비스를 부과하는 것이 고작이다. 앞으로 인터넷 관련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이 업체는 통신서비스를 포기하지 않는 한 통신서비스 업체일 수밖에 없다. 주력 업종이 아닌 이름으로 사명을 바꾸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 업체의 경우 많은 이유 가운데에서도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꼴찌를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유행을 따랐다고 봐야 한다.
이 업체처럼 사업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정도로 넘겨질 수가 있다. 그러나 사명 바꾸기가 피해를 준다면 문제가 다르다. 일부 오프라인 업체들 가운데 전자상거래 홈페이지 정도만 갖추고 의도적으로 닷컴류의 이름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 인터넷시대에 맞는 영업 방식을 일부 도입한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마치 인터넷 업체인 듯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몇몇 상장사들은 기업의 실질적인 변화 없이 주가상승이라는 이득을 챙기고 있으며 비상장업체들도 이를 빌미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회사 이름에 현혹되는 이들에게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러나 남들을 현혹하기 위해 사명을 바꾸는 이들이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이름을 바꾸는 것은 일종의 사기가 아닐 수 없다.
회사의 이름은 그 회사에 내재돼 있는 가치에 따라 신인도가 매겨지는 것이다. 시대적인 상황이 변해도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쉽사리 사명을 바꾸지 않는 것이 좋은 예다. 새로운 변신을 전제로 한 사명 변경이 아니라면 사명 변경에 따른 홍보 비용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기업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성공에 가까운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