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러앨토에서 새너제이에 이르는 실리콘밸리. 약 7000여개의 첨단 벤처기업들이 입주한 이곳은 세계 최첨단 기술과 차세대 비즈니스 모델의 전시장이다. 하루에만도 10여개의 첨단 기업들이 새로 생기며 미국 벤처캐피털 투자의 약 40%가 집중된다. 때문에 벤처기업들은 실리콘밸리 입성 자체만으로도 기술력과 비즈니스 모델의 가치가 보장돼왔다.
그러나 이제 실리콘밸리에는 변화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닷컴기업」에서 시작된 벤처비즈니스에 대한 거품논쟁이 가열되면서 첨단 기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산실이라는 이곳에서도 벤처비즈니스의 수익구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이제 기술력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과 경쟁력 외에 실질적 수익기반이 약한 비즈니스 모델로는 실리콘밸리 접근 자체가 힘들다.
따라서 실리콘밸리 진출을 통해 벤처신화 창조를 꿈꾸는 국내 벤처기업들은 일단 이곳에서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을 정도의 경쟁력을 갖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핵심(Core)기술 없이 단순 아이디어에서 파생된 모델 가지고는 설사 진출한다 해도 현지 투자가들이나 관련업계로부터 소외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리콘밸리에서도 통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능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 역량을 한곳에 집중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곳에서 벤처컨설턴트로 활동중인 박승진씨는 『한국업체들은 보통 3∼4가지 모델을 제시, 도무지 집중이 안된다』며 『가장 자신있는 모델에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네트워크장비업체인 알테온시스템의 도미닉 오 사장은 『시스코시스템스라는 거대기업이 인터넷 인프라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지만 알테온은 웹스위치 분야에 역량을 집중, 이 분야에서는 시스코도 두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 플랜을 구상할 때부터 아예 세계시장을 겨냥, 월드와이드 전략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말한다. 좁은 내수시장만 보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진입하고 나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식의 구시대적 경영 마인드로는 실리콘밸리에서는 통하지 않으며 그만큼 이익을 실현하기는 더 어렵다는 것.
인터넷 만화·애니메이션 서비스라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로 공격적인 세계시장 진출 전략을 추진중인 엔웍스의 이도용 사장(29)은 『우리나라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에 떨어지지만 인터넷을 통한 애니메이션서비스 비즈니스는 앞섰다는 자신감과 시장성을 감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의 초점을 철저하게 틈새시장에 두는 것도 국내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행에 앞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시장의 초점을 IBM이나 시스코같은 초대형 기업에 맞춰서는 자생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것. 이밖에 수익기반을 중시하는 벤처 평가기준 변화에 맞춰 국내 벤처기업들의 실리콘밸리 진출 전략에 있어서도 자생력 있는 수익 모델 정립에 더욱 많은 관심과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중배기자 j 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