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독일 공장 탐방기

동베를린을 관통하면서 유유히 흐르는 슈프레강을 따라 3만여평의 부지위에 자리잡은 삼성SDI의 독일 생산법인(SDIG). 강을 끼고 있어 눈앞에 한적한 시골의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공장이라기보다는 어느 휴양지에 들어선 리조트 같다. 공장이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여기가 브라운관 공장인 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작 공장안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분주하다. 한편에서 브라운관을 생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 25인치 컬러TV용 브라운관(CPT) 생산라인을 28인치 와이드 평면 브라운관 라인으로 개조하는 공사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가동하면서 라인 개조작업을 동시에 벌이고 있는 것.

현재 개조공사를 전담하는 한국업체들의 150명 인력들이 독일 근로자 사이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8월에는 평면 브라운관 라인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인부들의 손길은 더욱 바쁘다.

이 라인의 개조공사가 끝나면 독일법인은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한다. 명실상부하게 유럽의 브라운관 공장 중에서 최첨단 제품 생산 공장으로 우뚝 서게 된다.

지난해 2월에 독일 공장을 맡은 박태식 상무는 『예전같은 제품구조로는 독일 공장은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 과감하게 평면 브라운관에 대한 투자를 단행하게 됐다』고 들려준다.

삼성SDI가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지난 90년 초 컬러 브라운관의 유럽 진출을 모색하던 삼성SDI는 당초 영국 북부 지역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그러나 톰슨과 필립스 등 현지 브라운관 생산업체들의 강력한 반발로 영국 진출이 여의치 않게 되자, 대안 마련에 고심했다. 그 과정에 삼성SDI는 독일의 신탁청으로부터 구 동독의 WF 인수를 제의받자, 이 공장을 인수한 것이다. 당시 독일 신탁청은 동독의 자존심이 걸려 있던 최대 종합전자업체인 WF를 회생시키기 위해 여러 업체들과 접촉하던중 1억5000만DM을 무상지원하는 형태로 삼성측에 넘겼다.

삼성SDI는 인수하자마자 이 공장에 2억DM을 투자, 25인치 중대형 브라운관 생산라인 2개 라인을 구축하고 양산에 나섰다.

그러나 삼성SDI는 92년 인수 이후 공장을 가동하면서 눈물나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 설비와 조직상의 문제와 오랫동안 공산주의사회의 생활에 젖은 의식문제 때문이었다.

삼성SDI는 지난 8년동안 이 문제와 씨름하면서 경영개선 활동을 펼쳤으나 현상유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적적자 1억5000만DM로 인수당시 무상지원받은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

독일 공장은 결국 지난해 상반기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재고가 최악의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공장 여기 저기에 재고가 넘치면서 약 40만개의 브라운관 재고가 쌓였다. 이는 한달 보름 정도의 생산물량이다.

박 상무는 『생산라인을 가동해도 재고를 쌓아놓을 곳이 없었다』면서 『당초 세운 생산계획을 포기하고 5월에 13일, 6월에도 14일밖에 가동하지 않고 나머지는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재고는 줄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공장 분위기는 나빠지기 시작했다. 일부 가동을 중단하면서 삼성이 철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돌면서 공장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99년 상반기동안 800만DM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임직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시작됐다. 우선 재고를 줄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구매선을 전환한 유럽업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집중했다. 『개당 가격을 2∼3DM씩 깎으면서 제품판매에 열을 올린 결과 20일치 가동물량에 해당하는 20만개 수준의 재고를 줄일 수 있었다』고 박상무는 들려준다. 이같은 특판활동에 계절적으로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재고가 줄어들면서 지난해 9월부터 가동을 늘리기 시작, 정상화를 되찾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반기에만 1000만DM의 흑자를 달성, 상반기의 적자를 만회하고 전체적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상황이 반전된 데는 무엇보다도 근로자들의 의식변화가 컸다. 예전의 경우 삼성이 인수한 데 대한 불만들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위기상황에서 다시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뭉치면서 이같은 분위기가 사라지고 생산성이 높아졌다. 박 상무는 『2개 라인에서 1만3200개를 생산, 지난해 1만2400개보다 1000개 정도 늘어났다.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인건비 비중을 14%까지 낮출 수 있었다』고 들려준다.

또한 노사합의를 이뤘다. 현지인 부장 12명 등 중간 간부진을 중심으로 900여명의 근로자들이 사업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 것이다.

삼성은 독일법인의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완전평면 브라운관을 생산하기로 하고 라인 개조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올해 유럽시장에서 평면 브라운관의 규모는 250만개로 전체 브라운관시장의 10% 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먼저 투자에 나선 것』이라고 박 상무는 말한다.

지난해의 어두운 기억을 슈프레강에 흘려보내고 올해 339일을 가동, 4억5000만DM의 매출을 올려 사상최대 흑자규모인 3000만DM를 달성할 계획이다.

박 상무는 『이미 상반기에만 1000만DM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현재 추진중인 사업구조조정을 성공리에 마치면 이같은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자신에 찬 밝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베를린=원철린기자 cr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