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11) 벤처기업

해외 진출<1>

IMF의 위기는 나에게도 닥쳐왔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기업체를 경영하다 보면 가끔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컴퓨터 산업이 활성화되기 전인 십여년 전부터 자동화 기술산업에 뛰어들었던 만큼 위기 역시 다양하게 겪었다. 그러나 그 위기와 IMF의 침체와는 성격이 달랐다. 이번에 한국이 겪었던 IMF는 경우에 따라,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실제 대기업에서 위기를 만들었지만, 상당수의 중소기업이 그 위기의 연쇄반응으로 도산했다.

해외로 시선을 돌린 것이 반드시 IMF로 인한 대책은 아니었지만, 한국이란 국한된 지역의 시장 속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은 평소부터 꿈꿔오던 일이었다. 어차피 기업을 시작할 때도 일본에 진출해서 활로를 열었으니, 내가 해외 진출하려는 것은 새삼스런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미 일본과 미국·독일에 기술력을 수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본격적인 해외진출에 나섰다. 제일 먼저 중국 시장을 겨냥했다. 중국은 컴퓨터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지만, 내가 개발한 홍수 예방 시스템은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99년 여름에 나는 북경에 사무실을 차렸다. 중화토지개발회사를 가지고 있는 유림회장과 같은 건물에 있었다. 한국에서 간 직원 한 명과 중국인 한 명, 그리고 여자 한 명을 포함한 조선족 교포 세 명을 고용했다. 일단은 연락 사무소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사업의 전진기지임에 틀림없다.

사무실은 이십평에 불과한 조그만 방이었지만, 개장을 축하하기 위해 만토 집단의 류 총재와 부총재들이 왔고, 수리부의 설진유 차관이 참석했다. 자축하는 파티에서 설진유 차관은 해를 넘기기 전에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것은 매우 애매한 말이었다. 그 성과라는 것은 능동적일 수도 있지만, 피동적인 결과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이제 IMF를 극복했지요?』

설 차관이 격려하는 어투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요.』

나는 엄살을 피웠다. 설 차관이 물을 때는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이 IMF 현상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믿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나의 생각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중국에 사무실을 차렸으니 자주 오십시오. 그리고 서로 협력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