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필립스LCD 5세대 규격 확정의 의미

LG필립스LCD의 이번 5세대 TFT LCD 규격 확정은 세계 TFT LCD업계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킬 전망이다.

우선 차세대 규격을 놓고 고민중인 경쟁사들로선 규격의 조기 확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국내외 TFT LCD업체들이 설비 투자비 절감을 위해 차세대 규격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LG필립스의 방침이 이 추세에 「기름을 부을지」 혹은 「찬물을 끼얹을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그동안 앞선 설비 투자로 세계 TFT LCD 시장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의 관련 대응에 업계의 눈길이 벌써부터 집중되고 있다.

◇왜 선수를 치나=LG필립스LCD가 4세대 규격 제품의 양산에 들어가기도 전에 5세대 규격을 잠정 확정한 것은 최근 대형 모니터용 TFT LCD시장에서의 성공을 밑거름으로 차세대 시장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회사는 경쟁사에 앞서 15인치와 18.1인치 모니터용 제품 시장을 집중 공략, 이 분야에서 부동의 1위에 올랐다. 또 모니터용 TFT LCD시장은 갈수록 대형화 추세로 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모니터시장은 540만대에 이르면서 17인치와 18인치 모니터시장도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LG필립스는 경쟁사에 앞서 선점한 이 시장을 발판으로 20인치 이상의 대형 TFT LCD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5세대 규격을 조기에 확정하는 것도 경쟁사보다 먼저 대형 TFT LCD 양산에 들어가 시장을 선점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관계사인 LG전자의 디지털TV 사업 전략을 들 수 있다.

LG전자는 자회사인 제니스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앞세워 디지털TV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으며 특히 20인치대 제품에서는 TFT LCD의 채택을 적극 추진중이다.

LG필립스로서는 LG전자와 제니스라는 확실한 물량 공급처를 사실상 확보해 놓은 상태여서 경쟁사들에 비해 대형 TFT LCD 조기 양산에 느긋한 입장이다.

◇경쟁사들의 대응=삼성전자와 샤프, 마쓰시타, NEC 등 주요 TFT LCD업체들은 5세대 규격을 놓고 최근 몇개월째 고민만 해왔다. 기존 4세대 이전 규격 제품과 달리 막대한 설비투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차세대 규격 확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LG필립스의 규격 확정으로 다른 경쟁사들도 조만간 규격 확정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규격 확정이 늦으면 양산 준비도 늦어지며 자칫 LG필립스에 대형 시장을 선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회사는 15인치 모니터 제품 시장에서 LG필립스에 이미 일격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사실 삼성전자, 샤프 등은 5세대 규격으로 800㎜×1000㎜에서 960㎜×1100㎜에 이르는 규격을 놓고 신중히 검토해 왔다.

삼성전자의 경우 기존 4세대 라인의 투자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920㎜×1100㎜와 이를 업그레이드한 960㎜×1100㎜ 등 두 규격을 놓고 막바지 검토중이다. 관심은 이들 회사가 과연 LG필립스에서 확정한 이번 규격을 따를 것이냐는 것이다.

TFT LCD업체들은 최근 5세대의 투자 부담이 최소한 1조원 이상 달하고 있는데 따른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5세대 제품부터는 규격을 통일하자는 논의를 물밑에서 진행해 왔다. 이를 감안하면 TFT LCD업체들은 이번 LG필립스의 규격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같은 선두 업체들이 과연 이를 따르겠느냐는 것이다.

삼성전자로선 내심 추진해온 규격과 다른 LG필립스의 규격을 따르자니 자존심이 상하며 또 그렇다고 다른 업체들이 LG필립스의 규격에 동조할 경우 솔로를 고집하는 게 영 내키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노트PC용 TFT LCD에 주력해와 모니터용 제품에 전념하다시피 한 LG필립스와 입장이 다르다. 그렇지만 삼성전자도 모니터와 디지털TV시장으로 축을 옮겨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LG필립스와 같은 규격을 채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는 삼성전자가 LG보다 앞서 양산에 들어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설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과연 삼성전자가 LG필립스의 규격을 따를는지 아니면 다른 규격으로 나갈 것인지에 대해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로선 다른 업체들은 세계 1위 업체인 삼성전자의 규격 확정을 지켜본 이후에 규격을 확정할 가능성이 짙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