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동박 수요의 8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일진소재산업의 조업차질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국내 인쇄회로기판(PCB)업계의 연쇄 조업차질이 우려되는 등 상황이 갈수록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일 노조측의 불법파업에 대응, 일진소재산업이 단행한 직장폐쇄 조치가 열흘 이상 지속되고 앞으로도 더 길어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 그동안 재고물량으로 공장을 가동해온 PCB용 원판업체 및 PCB업체들은 이번주부터 공장 가동에 지장을 받을 것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PCB업계 관계자는 『이번 동박 파동을 계기로 그동안 국산 PCB용 소재를 사용해온 국내 주요 PCB업체들이 외산으로 공급선을 전환할 움직임을 보여 근 10년 이상 PCB 소재 국산화를 추진, 거의 자립 단계에 와 있는 국내 PCB소재산업이 다시 후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후유증을 걱정했다.
동박 파동에 대처, 부산하게 움직이는 PCB업계의 모습을 정리했다.
◇동박업계
이번 동박 파동을 불러온 일진소재산업측은 현재 3개 공장 중 1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채 2개 공장만을 관리직 및 비노조원을 통해 가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박 공급량은 평소의 50%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으며 특히 동박의 재단(슬리팅)공정이 어려워 롤 형태의 동박을 공급하는 실정이다.
LG금속을 인수, 합병한 LG산전은 현재 동박 생산설비를 풀가동하고 있으나 워낙 생산규모가 적고 품질승인 문제가 있어 일진소재산업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PCB업계의 분석이다.
◇원판업계
동박을 거의 일진소재산업에 의존해온 (주)두산의 경우 지난주 말부터 부분조업에 들어갔으며 이번주부터는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주)두산은 일본에너지·후쿠다·우루카와 등 일본 동박업체로부터 동박을 긴급 수입, 주문에 대처하고 있다.
LG화학의 한 관계자는 『일진소재에 의존해온 비중이 낮아 큰 지장은 없다』면서 『일본 미쓰이·후루카와 등으로부터 동박을 공급받고 있다』고 밝혔다.
페놀계 PCB 원판을 생산해온 신성기업은 일진소재로부터 페놀계 동박의 공급이 차질을 빚자 킹보드·장춘 등 대만 및 일본 동박업체로부터 동박을 긴급 공수받는 등 비상 생산체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수출선에 대한 납기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미쓰이·후루카와 등에서 동박을 공급받은 한국카본의 경우 일진소재 사태로부터 다소 비켜 서 있다. 오히려 후박 원판의 주문이 쇄도, 조업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것이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
◇PCB업계
동박 파동의 영향을 가장 심하게 받을 것으로 우려됐던 대덕GDS는 이미 대만 킹보드, 난야, 일본 마쓰시타 등 외국 원판업체로부터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받기로 확약을 받은 상태라 다소 안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일진소재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덕전자·삼성전기·LG전자 등 대기업들도 일본·유럽 등지로 원판 및 동박의 공급선을 다변화, 아직까지 조업에 차질은 없다는 반응. 그러면서도 수입 동박 및 원판만으로 정상조업을 장기간 유지할 수 없다고 보고 사태의 조기 정상화를 기대하고 있다.
중소 PCB업체들은 다소 상황이 심각할 수 있다는 것. 중소 PCB업체의 경우 외산을 공급받기가 수월하지 않고 (주)두산과 일진소재산업의 눈치를 봐야 할 입장이라 외산으로의 공급선 전환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직까지 국내 전자업체들은 동박 파동의 영향권 밖에 머물고 있다. 그러면서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PCB업체들로부터 사태 추이를 보고받는 등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