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터넷시장이 열리고 있다. 아시아 IT시장의 맹주를 꿈꾸는 중국 정부가 인터넷시장 선점을 위해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업체들도 세계 최대의 시장인 중국 공략을 위해 잇따라 중국행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 인터넷 업체 중 중국진출에 성공한 업체는 아직 없다. 누구나 중국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을 진정 이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중국 인터넷시장의 현주소와 국내외 업체들의 진출사례를 중심으로 국내 인터넷 업체들의 대응전략을 모색해본다.편집자
「세계적인 상품이 아니면 명함을 내밀지 말라.」 비즈니스차 중국 땅에 발을 디뎌본 사람이라면 이 말을 잊지 않는다.
지난 4월 말 북경시내 국제전시장(북경국제전람중심)에서는 「컴덱스차이나2000」이 열렸다. 나라별로 전시부스가 마련됐고 70% 이상을 중국내 인터넷업체들이 차지했다. 급속하게 발전하는 중국 인터넷시장을 보여줬다. 세미나에서는 인터넷과 리눅스에 대한 강연이 나흘 동안 쉴새 없이 열렸다. 전시회에 참석한 많은 외국 IT관계자들은 이제 중국시장이 본격 태동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중국진출을 장담하는 사람은 없었다. 뜻은 있으나 어떻게 진출할 것인지 누구와 손잡을 것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결정부터 하고 볼 일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 시장을 보는 눈이 크게 달라졌다.
◇섣부른 시장공략이 부른 화=3년 전 H기업의 일이다. 해외개발 담당 직원의 의지로 처음 중국시장에 발을 붙인 이 회사는 의기양양했다. IT기술도 낙후됐고 시장 여건도 아직 한국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선점효과가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북경시내 일류 호텔을 빌려 회사소개와 상품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멋지게 해냈다. 참석자 대부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의기에 찬 직원은 중국 시장을 통째로 얻은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본격적인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내 인터넷업체와 협상에 들어갔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중국업체의 표정관리. 『가격을 조금 깎읍시다.』 중국 업체측의 첫 제안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깎자는 가격은 「조금만」이 아니었다. 제시가격의 90%이상을 깎자는 제안이었다. 구매의 뜻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상황을 간파하지 못한 직원은 협상 끝에 결국 제시가의 70%선에서 합의를 봤으나 요구사항은 또 있었다. 중국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해달라는 요구였다. 한풀 꺾인 직원은 본사에 요구해 3개월여에 걸친 개발 끝에 제품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중국 업체는 손을 저었다. 원하는 바가 아니므로 조금만 더 손을 봐 달라는 것이었다. 가격 또한 더 깎아달라는 뜻을 비쳐왔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3개월여에 걸쳐 개발을 했고 가격을 깎아 주었다. 2차 검수과정에서도 중국 업체는 시비를 걸었다. 제품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 또 다시 3개월여에 걸친 개발 끝에 들고 간 제품에 대해 중국업체 담당자는 노골적으로 「노」라고 말했다. 더 이상 정력을 소모하지 말라는 말도 함께 붙였다. 결국 H기업은 엄청난 손해를 안고 중국 시장에서 깃발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중국의 인터넷시장은 이제 불도저의 굉음이 들리고 있다. 터를 닦고 기둥을 박고 있다. 이제 시작하는 시장이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우리의 기술이라면 이정도 시장쯤이야」라고 쉽게 판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 인터넷시장을 경험해보지 않은 업체들에 중국시장은 만리장성보다 더 높다. 대기업인 A업체는 연길에 SI업체 「K연건(SW)」을 설립했다가 철수의 쓴맛을 봤다. 연길과학기술대학과 합작한 한 ERP업체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기술로 공략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터넷 시장이 만만치 않은 이유는 있다. 정서와 토양이 다르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체제가 다르다. 관의 통제가 어느 사회보다 강하다. 자유경제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지만 기업의 생사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언제나 관이다. 따라서 중국 진출은 먼저 국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