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안 산업과 시장 현황>
국내에서 보안이 하나의 산업으로 떠오른 것은 불과 몇년새다. 지난 96년 외산 제품이 소개되면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97년 말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기업체와 공공기관의 투자가 위축되면서 침체기에 들어갔다. 98년 하반기 정보기술(IT) 분야의 투자가 공공 분야를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보안 시장에도 봄바람이 불었다. 이후 정보 보안 분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인터넷이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다. 인터넷의 가장 큰 특징인 개방과 공유는 정보 관리와 정면으로 배치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안 산업이 무엇보다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보보호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은 인터넷 산업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에서 보안 제품이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이다. 당시에 방화벽 제품이 보안 시장을 주도했다. 국내에는 90년대 중반에 보안 제품이 하나 둘 선보이기 시작했다. 방화벽 제품으로는 국내와 미국 시장만을 놓고 볼 때 3∼4년 정도 격차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96, 97년 당시 바이러스 백신과 방화벽 정도의 국산 제품이 선보였으며 백신 분야를 제외하고는 외산 제품이 시장을 주도했다. 이후 1, 2년의 시장 형성기를 거쳐 막 꽃피려는 시점에 IMF를 맞으면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IT투자 순위에서 정보보호 분야가 밀려나면서 주요 업체의 매출이 격감했다. 특히 벤처 기업 위주로 형성된 보안업계는 일부 업체가 도산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시기가 한편에서는 시장을 재정비하고 우수한 인력을 보강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IMF로 대기업에서 신규 인력 채용이 크게 위축되면서 고급 인력이 중소기업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암흑기이자 전환기였던 셈이다.
IT분야 투자가 되살아나면서 보안 시장도 냉기가 풀리는 시점이 98년 말이었다. 특히 이 시기에 CIH바이러스 사태가 벌어지면서 정보화 역기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바이러스 피해에 이어 백오리피스와 같은 해킹 위협이 부각되면서 정보 보호에 대한 마인드가 크게 확산됐다. 정보보호센터에서 평가 인증을 받은 제품이 출시된 것도 이 시점이다. 정부에서도 지난해 7월 공인인증 기관을 설립하고 전자상거래 시대를 겨냥한 본격적인 체제를 갖추게 됐다. 금융권에서도 사이버 금융 서비스에 잇따라 나서면서 해킹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보안 솔루션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올해 보안 시장도 본격적인 도약기에 들어섰다. 바이러스 백신과 방화벽 정도에서 인증솔루션·침입탐지시스템·시스템 보안·PC와 메일 보안 등으로 제품군도 세분화됐다. 이 가운데 관제 서비스는 컨소시엄 형태의 전문업체가 대거 등장할 정도로 주목받는 분야로 떠오르는 중이다. 또 시스템 구축을 위한 하나의 옵션 서비스 수준이었던 보안 컨설팅도 높은 부가가치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잇따른 불법 해킹 사고가 보안 업체의 주가를 올리고 시장 형성에 크게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
보안 업체는 올해를 실질적인 정보보호 원년이라 말할 정도로 큰 폭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또 올 하반기부터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점차 분야별로 주도업체가 출현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인증 기관이 본격적인 서비스에 나서면서 우선 공개키(PKI) 기반 솔루션이 주요 시장의 하나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네트워크 보안 제품인 침입탐지시스템 역시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시장 경쟁이 시작될 전망이다. 상반기에 두드러진 실적을 올렸던 보안 컨설팅 분야 역시 하반기에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인터뷰/김홍선 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
무단 해킹이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면서 위상이 올라간 단체를 꼽으라면 단연 정보보호산업협회다. 산업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부와 업계의 채널로 보안 분야의 대표 민간 기관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비록 일각에서는 협회 활동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도 일고 있지만 2년이라는 짧은 발자취에 비춰볼 때 그동안 산업계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평가다. 김홍선 회장(시큐어소프트 사장)은 초창기부터 협회를 이끌어온 터줏대감이다.
『올해를 정보보호 원년으로 정하고 이름에 걸맞은 실질적인 산업 협회로 거듭날 계획입니다. 전문 전시회, 세미나와 심포지엄 개최, 해외 시찰단 파견, 전문 보안 교육 과정 개설 등 업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준비중입니다. 정보보호의 중요성을 대내외에 알리는 한편 산업과 시장을 육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업에 나설 생각입니다.』
김홍선 회장은 『보안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협회의 역할이 날이 갈수록 커가고 있다』며 『이에 걸맞게 사무국 인원과 기능을 크게 보강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초기 30여개 업체로 출발한 협회는 올해 90여개 회원사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면에서 몰라볼 정도로 커졌다. 올해는 양적인 성장에 걸맞게 질적으로 내실을 갖춘다는 전략이다.
『최근 인터넷이나 전자상거래 붐과 맞물려 정보보호 시장도 몰라볼 정도로 커졌습니다. 정보보호업체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기술 인력이나 제품 수준을 볼 때 기술력이 의심가는 업체도 꽤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조건 회원사를 늘리기보다는 경쟁력 있는 업체를 육성하는 데 주안점을 둘 계획입니다.』
김홍선 회장은 정보보호가 정보화 패러다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야라며 산업체에서도 단순히 비즈니스 목적에서 이 분야에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 도약기에 접어든 보안 시장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출혈 경쟁보다는 시장 자체를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업체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국내업체도 세계 시장에 진출해야 합니다. 정보보호 강국인 이스라엘의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좋은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세계 시장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기술과 제품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연구기관·산업체가 이를 위해 뜻을 같이 한다면 유수한 외국의 인터넷 업체가 국산 보안 제품을 찾을 날이 조만간 열릴 것입니다.』
정보보호 1세대인 김홍선 회장이 밝히는 정보보호 시장의 희망찬 청사진이다.
<보안 시장 버블 현상 심하다>
벤처 거품론과 맞물려 보안 업계도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는 안팎의 목소리가 높다. 지나치게 보안 시장을 과대 평가하고 있으며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보안업체 가운데 과연 몇 개 업체나 기술력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여론이다. 인위적으로 옥석을 가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정보보호 시장의 실상을 올바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이같은 주장의 골자다.
무단 해킹과 바이러스가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보보호는 인터넷에서도 가장 매력 있는 분야로 떠올랐다. 보안 솔루션·서비스·컨설팅과 같이 시장도 점차 세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안 전문 기업을 표방하는 업체가 이틀에 하나꼴로 설립될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 정보보호산업협회에 공식 등록된 보안업체만도 87개사에 달한다. 98년 당시 30여개사에 비해 3배 이상 회원사가 늘어난 셈이다.
특히 지난해 말 70여개사에서 불과 몇달새 18개사가 신규로 등록할 정도로 보안 업체 설립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는 협회의 공식 자료다. 협회가 파악하지 못하는 업체도 상당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보호 업계에서는 사업부 형태로 정보보호 분야를 가진 업체까지 포함한다면 100개 회사 정도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보보호산업협회는 올해들어 한 달에 8∼9건 정도는 협회 가입 문의와 관련한 전화라며 최근 불법 해킹이 인터넷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면서 눈에 띌 정도로 보안 업체 설립이 열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보안 전문 인력과 시장 규모를 비춰볼 때 이들 가운데는 무늬만 정보보호인 업체가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신생 업체 가운데 일부는 정보보호 기술 인력도 갖지 않고 외국에서 단순히 제품을 수입해 국내 시장에 공급하는 실정이다. 또 거창한 사업 계획에 비해 제품 수준은 초라하기 그지 없는 업체도 있다. 손쉽게 투자 자금을 유치받을 수 있고 정부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 복안 없이 사업을 다각화하거나 회사를 세운 결과다. 말 그대로 버블 현상이다.
시장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업체가 범람하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부작용이 제살깎기식 출혈 경쟁이다. 제품이나 기술을 통한 공정한 경쟁보다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홍보와 마케팅 싸움이 대부분이라는 평가다.
업계 내부에서도 『보안업체가 크게 늘면서 시장이 커지고 경쟁 체제로 가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기술보다는 가격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시장 논리에 따라 업체의 우열이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시행착오를 줄이고 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국내업체가 갖고 있는 기술력에 비춰볼 때 국산 제품도 잘만 다듬으면 해외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며 『좁은 국내보다는 해외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또 정부도 국내업체의 경쟁력과 산업 활성화를 위해 「K4 인증제」와 같은 평가 시스템을 확대하는 등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