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안 원 모
1.전자파의 유해성 여부
최근들어 전자파(electro magnetic field)에 대한 유해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자파가 암, 백혈병 등 불치의 병을 유발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연구가 대립되어 있는 양상이다.
전자파란 전기 및 자기의 흐름에서 발생하는 전자기 에너지다. 전기가 흐를 때 그 주위에 전기장과 자기장이 동시에 발생하고 이들이 주기적으로 바뀌면서 발생되는 파동을 전자파라고 한다. 전자파는 전기가 흐르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현대인은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불가피하게 전자파에 대해 노출된다. 이동전화 단말기를 비롯하여 개인용 컴퓨터, 텔레비전, 전기 면도기 등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가전제품 모두가 전자파를 발산한다.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이 제기됨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1996년에 「전자파 주의에 관한 공식 경보」 발표를 통하여 임신부는 컴퓨터 사용을 주 20시간 이내로 할 것, 전기 담요나 히터는 수면시 사용하지 말 것, 컴퓨터 모니터는 60㎝ 이상의 거리를 둘 것, 이동전화기는 짧게 사용할 것, 전자제품 사용 후에는 플러그를 뽑을 것 등 전자파 유해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노출을 줄이도록 경고한 바 있다.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30년전인 1969년 구 소련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1979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전자파의 유해성에 관한 학술 논문이 처음으로 발표됐다. 이 연구는 송전선에 대한 노출과 어린이들에게 발생하는 암의 연관성을 조사한 것이다. 연구결과 고압 송전선 근처에 사는 어린이집단의 암 발생률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 집단의 2.5배에 달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그러나 그 실험 방법에 여러 의문점이 제기됐다.
1990년대 들어 미국 환경청은 전자파에 대한 노출과 암의 연관 관계에 대하여 『연관성은 있어 보이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고 발표했고 미국 대통령부설 과학 및 기술 정책실 보고는 가전제품이나 송전선에서 배출되는 전자파가 인체 건강에 특별한 위험을 발생시킨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미국 국립과학연구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은 1996년 10월 31일, 과거 17년에 걸쳐 발표된 500여건의 전자파 관련 연구 보고를 검토한 결과, 전자파 노출이 인체에 위협을 가한다는 신뢰성 있는 증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전자파 노출과 관련돼 발생한 질병과의 인과 관계를 놓고 계속 연구, 토론이 진행중이다.
2.전자파와 소송
◇전자파 관련 소송
전자파와 관련된 소송은 주로 신체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토지가격의 하락 등 재산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에서 신체적 피해(personal injury)와 관련하여 제기된 최초의 전자파 관련 소송은 1993년의 「Zuidema v. SDG & E」사건이다. 샌디에이고 가스 및 전기회사(San Diego Gas & Electric)를 상대로 원고는 그의 집 위를 지나는 고압 송전선으로 말미암아 그의 딸이 소아암에 걸렸고, 주택 가격이 하락됐으며 생활 환경이 저하됐다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 회사가 전자파의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할 의무가 있고 이를 하지 아니한 것이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자파로 인하여 원고의 딸이 암에 걸렸다는 원고 제시의 과학적·의학적 증거들은 추론적이고 가설적이며, 피고 회사는 과실이 없고 또한 그러한 경고를 할 의무가 없으므로 피고 회사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고 주택 가격 하락과 생활 환경 저하에 대한 인과관계도 없다는 이유로 원고가 패소했다.
그후 전자파와 관련해 관심을 끈 소송은 1995년 제기된 「Covalt v. SDG & E」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그 소유 부동산의 사용가치가 주위에 설치된 고압선에서 흐르는 전자파로 인하여 저하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의 쟁점은 고압선에서 배출되는 전자파의 영향에 대한 문제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인지 아니면 관련 기관이 의학자 및 과학자들과 함께 해결할 문제인지의 여부였다.
캘리포니아 주 항소법원은 법원이 원고의 소송을 다룰 수 없다고 결정했다. 주 의회가 캘리포니아 전기가스공급위원회(CPUC)에 전기의 안전한 공급에 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결정권은 CPUC에게 있고 법원은 CPUC의 결정 및 전자파에 대한 의회의 정책과 상충되는 사안을 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 주 대법원은 이 결정을 내림에 있어 과학자, 미국 의사 협회, 캘리포니아 주 의사 협회, 주상공회의소 등 6개 단체의 의견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전자파에 대한 문제는 법률가나 배심원이 다루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의료 및 안전 문제 전문가들이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판시했다.
3. 불법행위 책임(tort)의 가능성
위와 같은 판례에도 불구하고 전자파 관련 소송을 주도하는 미국의 변호사들은 주법에 따라 다양하게 불법행위 책임이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전기공급 회사의 경우 과실책임(negligence)과 경고를 적절히 하지 않은 책임(failure to warn)이 인정될 수 있다. 전기는 본질적으로 위험한 것이고 전기 고유의 위험성 때문에 전기 공급 회사는 모든 예견 가능한 위험에 대하여 고도로 주의를 기울이고 필요한 경고를 하여야 한다.
전기 공급이 용역이 아니라 제품의 제조 및 공급으로 분류되는 주(州)에서는 엄격책임이론(strict liability)에 따른 제조물책임의 성립도 가능하다. 가전제품 등 제품제조자들에 대하여는 엄격책임이론, 과실 또는 하자(warranty)담보책임 등 기존의 이론에 따라 배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신체 상해에 대한 손해배상의 범위는 과거 및 장래의 치료비, 일실수익, 장애에 대한 손해배상, 위자료(loss of consortium) 및 고통(pain and suffering)에 대한 배상 등이고 사망의 경우에는 사망자에 대한 생명의 경제적 가치(economic value)를 배상받을 수 있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punitive damage)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전자파의 노출에 대한 위험성을 저하시키는 조치를 취하는 노력을 하지 아니하거나 대중에게 전자파 노출의 유해성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아니하거나 제품의 전자파의 노출 여부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그러한 행위가 고의 또는 과실로 인정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한편 전자파와 관련된 소송은 여타 소송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차적 소송(secondary litigation) 또는 구상금청구소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피고는 원천적인 책임이 있는 제3자로부터 그가 원고에게 지급한 배상금을 구상하거나 배상받으려 할 것이다.
전기공급회사와 전기제품 제조자는 하청업자와 부품 제조자 등을 상대로 제소하고 제소당한 당사자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연이어 제소하는 것이 그 예다. 보험회사에 대한 책임보험금 청구소송도 많이 제기될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전기 공급 회사는 통상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해 있다.
4. 전자파와 관련한 입법적 규제
◇외국
대중들의 전자파에 대한 우려에 대응하여 전자파에 대한 입법적 규제가 증가하고 있다. 1994년까지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플로리다, 뉴저지,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텍사스 그리고 위스콘신 주가 전자파 노출에 대한 정책 또는 기준을 마련했고 연방 정부는 의회에 관련 입법안을 상정시켰다.
호주, 일본, 폴란드, 스웨덴 및 영국은 이미 전자파 노출의 기준에 관한 규제법을 마련했다.
◇한국
우리 나라에서도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자파의 피해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인하여 송전선로 및 송전탑 건설에 차질을 겪고 있으며 정부는 전자파 인체 보호 규제기준을 제정하고 있다.
현재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전자기기는 정보통신부의 전자파적합검사(EMI)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인체에 유해하다는 관점보다는 전자파의 간섭으로 인한 오작동을 방지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본다.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전자파가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성별, 연령, 건강 상태 및 기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되고 있는 현실에서 규제안은 기업들에게 전자파의 배출을 최소화시키는 노력보다 규제안이 정한 수치에만 맞추면 된다는 안이한 태도를 취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 안 원 모 (安 源 模) 변호사 이력
1977년 2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79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수료
1978년 12월 제21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1979년 5월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1979년 8월 ∼ 1981년 8월 사법연수원 (11기)
1981년 9월 ∼ 1984년 8월 해군 법무관
1984년 9월 ∼ 1988년 8월 아세아합동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1989년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로스쿨(L.L.M),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취득
1989년 6월 ∼ 1991년 8월 미국 뉴욕 소재 법률회사 Winthrop, Stimson, Putnam & Roberts 소속 변호사(뉴욕 및 워싱턴 근무)
1992년 4월 ∼ 1993년 8월 포항종합제철(주) 상임고문 변호사
1993년 9월 ∼ 현정종합법률사무소 구성원 변호사
1999년 12월 ∼ 포항종합제철(주) 상임고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