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2000 사업자 선정에 주파수 경매제 도입이 가능한가.
정보통신부가 최근 주파수 경매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발표, 통신업계가 벌집을 쑤신 것처럼 들끓고 있다. 지난해 주파수 경매제 도입 근거를 마련하려는 전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보류,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여겨졌던 이 제도가 다시 살아났으니 정부의 진의를 파악하랴, 이해득실 따지랴 온통 법석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부정적 여론이 압도적이다. 국민 정서상 아직 허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고 이를 시행하는데는 너무 많은 걸림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상 주파수 경매제가 필요하더라도 이를 적용하기까지는 만만치 않은 「저항」이 예상된다. 심지어 정부 여당이 금융권 구조조정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로 주파수 경매제를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저의 의심성 분석」도 여기저기서 거론된다.
◇주파수 경매제란=말 그대로 주파수를 경매하는 것이다. 현행 통신사업법은 무선통신분야의 기간통신역무를 허가하는 것은 곧 주파수를 할당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IMT2000 역시 사업자 선정은 누구에게 주파수를 배정하느냐의 의미다.
우리 정부가 확보한 IMT2000 주파수는 2.5∼2.7㎓ 대역의 60㎒다. 이를 몇개로 쪼개서 희망 사업자에게 경매를 부쳐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 할당하는 방식이다. 사업자 수를 3개로 할 경우 20㎒식, 4개이면 15㎒씩 경매하는 것이다.
시장 경제가 정착된 일부 선진국들은 주파수 경매제를 선호한다. 사업자 선정 과정이 가장 투명할 뿐더러 정부 재원 확충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은 IMT2000 주파수 경매를 통해 우리돈 약 4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렸다. 영국 정부도 놀랐고 세계를 뒤집어 놓은 충격파였다. 이에 자극 받은 독일이나 프랑스 정부도 주파수 경매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오래전부터 경매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과 북유럽 국가들, 한국 등은 주파수 경매보다는 사업 계획서 평가를 통한 심사평가 방식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출연금 제도라는 것을 도입, 사업권을 따 낸 기업들에 주파수를 할당하는 대가로 정보통신분야 연구개발에 투자할 일정금액을 내도록 하고 있다. 개인휴대통신의 경우 업체당 1000억∼2000억원 수준이었다.
◇왜 주파수 경매제인가=현 정부의 최대 이권사업이라고 불리는 IMT2000 사업자 선정과 관련, 정책진이 가장 피해 가고 싶은 것은 선정 방식의 투명성, 객관성 논란이다. 즉 특혜 시비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PCS 사업자 선정에서 경험해 본 것이다. 재벌은 물론 거대 통신사업자들의 이해가 워낙 첨예하게 대립된 문제라 심사 평가방식을 통해 탈락자가 나온다면 불공정 시비가 일 것은 뻔한 이치다. PCS사업자 선정때도 정부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심사 결과를 자신했지만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 심지어 국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까지 초래하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그래서 정부로서는 심사평가 방식을 시행할 경우 그 결과의 공정성을 국민들이 액면 그대로 믿어 줄 것인지가 최대 고민거리다.
주파수 경매제는 그럼 점에서 매력적이다. 높은 가격을 써 내는 업체에 주파수(사업권)를 할당하면 그만이다. 너무도 투명하다. 누구라도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여기서 거둬들인 수익금은 법률 개정을 통해 공적자금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정보화촉진법에 따라서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 활용할 수도 있다.
◇시장의 거센 반발=주파수 경매제 도입 검토라는 정통부의 발표가 있자마자 당장 통신업체의 주식이 폭락했다. 경제의 바로미터인 주식시장이 즉각 반응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파수 경매제가 시행된다면 업체당 약 2조∼3조원 가량이 소요될 터인데 현재의 사업자 형편상 이같은 거금을 조달할 방법이 거의 없다.
설사 재원을 마련한다 해도 투자비 2조원까지 계상할 경우 사업권을 따내도 수익을 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정통부 홈 페이지에는 주식 투자자들의 비난이 쇄도했다.
통신사업자들에겐 청천벽력이다. 일제히 주파수 경매제를 반대하고 나섰다. 자금 조달도 쉽지 않고 수익성도 기대하기 어려운데 다 망하라는 신호와 다름없지 않느냐며 반발한다. 재벌기업의 경우 계열사간 출자총액 한도에 묶여 있고 부채비율까지 정해져 있는 판에 수조원을 한꺼번에 조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결국 외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이는 경영권을 내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해서 사업권을 획득한다 해도 단기간에는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거의 없어 자칫 헐값으로 외국인에게 넘겨주는 사태가 올 수도 있고 관련 장비시장까지 외국에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주파수 경매제를 실시하면 현실적으로 정보통신시장의 안방을 고스란히 외국에 내주는 상황이 된다고 하소연이다.
도입 시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경매제의 경우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적어도 1∼2년전에 결정하고 한국 현실에 적합한 경매 모델을 개발해야 하며 시장에 충격이 작은 한두번의 경매를 실시한 이후 IMT2000과 같은 큰 프로젝트에 적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파수 경매제를 도입하려면 일러야 7월에 법을 개정하고 불과 2∼3개월만에 경매 모델을 만드는 동시에 시뮬레이션을 해야만 연말 사업자 선정 일정에 맞출 수 있다. IMT2000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너무 촉박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시행착오나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배경 있나=업계는 이같은 현실론을 잘 알고 있는 정부가 주파수 경매제를 밀어붙인다면 무언가 또 다른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공적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정부여당이 적어도 10조원(증권가 추산)의 재원을 조달할 대안으로 이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반발해도 정부가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업계로서는 전전긍긍이다.
일부에서는 주파수 경매제가 여의치 않을 경우 정부가 출연금 상한선을 폐지, 이와 유사한 효과를 얻고 싶어한다고 분석한다. 예컨대 심사평가 방식으로 가되 출연금 상한선을 없애 사실상 경매제를 실시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경매제를 도입하지 않고 출연금을 통해 해결하는 방안은 편법 운용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돼 정부로서도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실제로 안병엽 장관은 최근 『출연금 상한선 철폐는 일종의 편법이며 이를 도입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래서 업계는 주파수 경매제가 무산되고 출연금 상한선 철폐도 쉽지 않다면 출연금 상한액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대안이 떠오를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상한선을 1조∼2조원으로 높여 놓으면 명분과 실리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무튼 주파수 경매제는 IMT2000으로 가는 길목에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첫 시험대가 됐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