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요원한 디스플레이 국산화

「길고도 꼬부라진 길(The long and winding road)」 비틀스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다. 이 노래 제목을 실감케 하는 행사가 지난주 미국에서 열렸다. 세계 디스플레이업계의 경연장인 「SID2000」 전시회다.

이 전시회를 돌아본 국내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의 눈길은 부품과 소재, 그리고 장비에 집중됐다.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유기EL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상용화가 임박한 탓이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지난해에 비해 상당히 진척됐으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라는 것이다.

마쓰시타의 플라즈마코·파이오니아 등은 해상도나 전력 소모량을 한결 개선한 PDP를 선보였으나 현안인 가격을 낮출 만한 획기적인 부품, 소재나 관련 기술은 이번 전시회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기EL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양산에 필요한 획기적인 부품, 소재의 출품은 많지 않았다.

한국 관람객은 『이번 전시회만 놓고 보면 PDP나 유기EL의 본격적인 상용화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나마 출품한 부품, 소재 및 장비 업체가 모두 외국 업체 일색이라는 점이다. 일부 일본 업체는 개발해 놓고도 공개를 꺼려 이번에 출품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내 업체로는 무기EL을 출품한 한 중소기업이 유일했다. 국내 업체는 일본 업체처럼 「있으면서」 내놓지 않은 게 아니라 「없어서」 내놓지 못했다.

새로운 디스플레이는 부품, 소재와 관련 장비 없이 성공은 물론 상용화조차 힘들다. 심지어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사라질 수도 있다.

「SID 2000」에서 만난 국내 업체 관계자는 『디스플레이의 경쟁력도 결국 핵심 부품·소재나 장비에서 판가름나는 데 외산 장비에다 외산 부품과 소재로 만드는 국산 디스플레이 패널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한계가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 업체나 우리 업체나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상용화에 대한 어려움은 마찬가지나 우리 업체는 더욱 먼 길을 걸어야 할 판이다. 더 이상 비틀스 노래를 떠올리지 않게 디스플레이 부품·소재 및 장비 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육성책이 아쉽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