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산품은 디자인 단계를 거친다. 과거에는 디자인 작업을 제도판을 이용해 종이 도면에다 그렸지만 이제 이러한 풍경은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의 제조업체가 컴퓨터를 이용해 디자인한다. 컴퓨터를 이용해 디자인하는 소프트웨어(SW)가 캐드다.
국내 제조업체가 캐드 SW를 도입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로 현재는 캐드 SW 시장이 수천억원 규모를 이룰 정도로 성장했다.
캐드 SW는 개발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따라서 초기 국내 캐드 시장은 외국 업체 일색이었다. 지금도 각 캐드 분야에서 주요 제품으로 손꼽히는 제품은 거의 외산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국산 캐드 SW가 하나둘씩 등장했고 지금은 틈새 시장을 공략해 나름대로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다.
캐드 SW는 그 용도에 따라 기계설계캐드(MCAD), 건축설계캐드(AEC), 회로설계캐드(EDA) 등으로 나뉜다.
각 캐드 시장을 이끌어가는 각 업체 대표의 면면을 살펴보면 국내 캐드 SW 보급 초기 단계부터 활동해온 주역에 뒤를 이어 새 얼굴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가장 시장 규모가 큰 MCAD 산업은 최근 신진세력으로의 물갈이가 큰 폭으로 이뤄졌다.
PTC코리아는 지난 4월 초 본사에서 파견된 캘리랜드 지사장의 뒤를 이어 작년 2월 영입한 정재성 부사장이 사장으로 발탁됐다. PTC코리아가 내국인을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92년 지사 설립 초기를 제외하고 7년여만에 처음있는 일로 직원 100명 시대를 여는 시점에서 국내 상황을 보다 잘 아는 내국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정재성 사장은 경동고와 한양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전자 반도체 연구소, 포스데이타 기획팀장 등의 경력을 갖고 있는데 반도체와 시스템 통합(SI) 분야에서 주로 활동해오던 정 사장이 조금은 다른 캐드 시장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주목되고 있다.
정 사장은 MCAD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품생산관리(PDM)의 발전된 개념인 협업적제품상거래(CIC)에 주력해 올해 작년의 2배에 달하는 4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목표로 잡고 있다.
PTC코리아와 삼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는 MCAD 분야의 강자는 SDRC코리아와 유니그패픽스솔루션즈코리아다. 두 회사 모두 PTC코리아와 마찬가지로 최근 사장을 교체했다.
SDRC코리아는 아태지역 부사장으로 승진한 유창희 사장 자리에 권경열 영업부장을 임명했다. 연세대학교 74학번인 유창희 사장은 지난 89년 사장 자리에 오른 후 만 11년 동안 SDRC코리아를 이끌어온 국내 MCAD 산업의 산 증인이다. 신임 권경열 사장은 한양대학교 출신으로 92년 SDRC코리아에 합류한 이래 줄곧 마케팅과 영업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유니그래픽스솔루션즈코리아도 캘리랜드 사장이 물러나고 대만 출신인 지미 왕씨가 그 자리를 이었다. 대만 청양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대학에서 산업공학 박사 학위를, MIT 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친 그는 89년 유니그래픽스솔루션즈에 입사한 후 제너럴모터스의 캐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능력을 인정받은 후 아태지역 디렉터를 거쳐 이번에 한국으로 왔다.
캐드 전문기업은 아니지만 MCAD 시장에서 IBM의 영향력은 매우 막강하다. 가장 하이엔드 시장인 자동차 캐드 분야에서 IBM은 MCAD SW인 카티아로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IBM 캐드 사업부는 나승찬 실장이 이끌고 있다.
IBM 캐드 비즈니스를 이야기하면 다쏘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다. 본래 카티아는 프랑스의 다쏘시스템이 개발한 캐드 SW로 IBM이 다쏘시스템을 인수하면서 IBM이 다쏘시스템과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맺으며 카티아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다쏘시스템 정대영 사장도 14년간 IBM에서 근무하며 캐드 부문 마케팅 부장을 거쳐 98년 1월 다쏘시스템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막대한 개발비를 투여해 만든 외산 MCAD 제품 사이에서 국내 업체도 점차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이 중 금형 설계 분야에서 한국캐드캠서비스의 활약이 돋보인다.
한국캐드캠서비스의 김구동 사장은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대우전자 기술연구소를 거쳐 인터그라프 한국지사의 캐드 사업부에서 근무했다. 김 사장은 인터그라프 퇴사 후 여러 외산 캐드 제품의 국내 판매를 대행해오다가 국산 캐드 툴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금형 설계 SW인 케이몰드를 개발했다.
김 사장은 엔지니어로서 갖추고 있는 기술적 기반과 외산 캐드 SW 판매 과정에서 체득한 영업 노하우를 두루 갖췄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IBM 출신이 많은 캐드 업체 대표 중 성우시스템 이지성 사장은 몇 안 되는 HP 출신이다. HP에서 대기업 영업을 주로 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오토데스크의 MCAD 툴인 인벤터의 국내 영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웹 기반의 PDM 서비스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AEC 분야의 대표주자는 단연 오토데스크코리아다. 사실 캐드 시장을 잘 모르는 일반인도 오토데스크는 알 정도로 오토데스크코리아는 AEC뿐 아니라 MCAD·지리정보시스템(GIS)·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캐드 관련 분야에서 선도기업으로 자리잡아왔다.
오토데스크코리아는 92년 지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사장을 교체했다. 8년 9개월간 오토데스크코리아를 이끌어온 김일호 사장이 한국오라클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뒤를 영업이사인 남기환 사장이 이었다.
보성고와 성균관대,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을 졸업한 남 사장은 전임 김일호 사장과 마찬가지로 오토데스크코리아 설립부터 함께 일해왔다.
신임 남 사장은 내부 승진인데다 줄곧 영업 및 마케팅 부문을 총괄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오토데스크코리아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평가로 지난 4월 새로 내놓은 MCAD SW 인벤터 영업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오토데스크의 세력이 워낙 강한 탓에 AEC 분야의 국내 업체는 상대적으로 활동이 미미했지만 최근에는 한국가상현실의 장호현 사장, 코스펙정보의 여성수 사장 등이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DA 분야의 외국계 SW 업체로는 한국멘토와 한국케이던스가 발군의 활동을 보이고 있다. 한국멘토 강창록 사장(50)은 EDA뿐 아니라 국내 외국계 SW 업체의 최장수 사장 중 1명이다.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강 사장은 콘트롤데이터와 서울일렉트론을 거쳐 87년 한국멘토 사장에 취임한 이래 만 13년간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멘토는 93년 지사에서 독립법인으로 바꾸고 멘토그래픽스와는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멘토에는 강 사장 이외에 계속 함께 일해온 오찬현 상무와 박종명 상무가 있다.
한국멘토와 함께 EDA 분야를 이끌고 있는 한국케이던스의 발전은 현재 미국 코웨어 아시아담당 이사로 있는 김동식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반도체 산업 발전과 함께 연간 50% 이상의 성장을 일궈내고 미국 코웨어사로 옮겨갔다. 그의 뒤를 이어 조상철 사장이 잠시 맡다가 한국케이던스 사장자리는 임국진 사장에게 넘어갔다. 그는 반도체 장비 업체인 노벨러스 본사에서 8년간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국내 업체로는 제이슨테크의 류재성 사장, 다반테크의 박상조 상무, 서두로직의 류영욱 사장 등이 EDA 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