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댄스 영화제의 시나리오상을 통해 영화가 제작되기 전부터 미리 주목을 받기 시작한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데뷔작. 이 영화는 우선 화려한 캐스팅부터 영화 관객의 구미를 당긴다. 글렌 클로즈와 카메론 디아즈, 홀리 헌터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 하는 간판급 스타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성영화임을 입증해 주지만, 영화는 현명하게 「여성영화의 무게감」에 결코 짓눌리지 않는다.
감독은 적당한 완급의 속도감을 갖고 6명의 여자들의 일상을 스치듯 지나치며 그녀들이 사는 모습을 마치 수필을 써내려가듯 담백하고 담담하게 그려간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녀들의 안에는 자신들도 미처 깨닫?못하는 외로움의 무게가 조금씩 숨어있다.
감독은 거창하게 여성성을 거론하지는 않지만 사랑에 조금씩 지쳐가는 그들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확대시키며 퍽 세련된 포장지로 담아낸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에는 감정을 자극하는 흥분은 없지만 여성으로서 삶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여백과 슬픔은 있다.
대부분 성공한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거나 독립적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감독의 주관심사는 외로움이다. 그러나 그 외로움 역시 일상의 삶을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 같은 이미지에 불과할 뿐이다.
지적이고 당당한 여의사 키너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며 동료의사의 전화를 기다리고, 그로부터 전화가 없자 점치는 여자를 불러들인다. 성공한 은행의 매니저인 레베카는 유부남과 연애하며 그의 아이를 임신하자 갈등에 빠진다. 마지막 임신일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애인이 어떠한 대안도 마련해주지 못하자 우연히 들른 바에서 만난 부하 직원과 하룻밤을 지내기도 한다.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동화작가 로즈는 이웃집으로 이사온 난쟁이 앨버트에게 호감을 갖지만 주위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또 아직 어린애라고만 생각했던 아들로부터 『여자와 잤다』는 얘기를 듣고 그녀의 외로움은 더욱 커진다.
남들의 미래와 운명에 대해 점을 치는 크리스틴은 정작 자신에게 문제가 닥치자 당황한다. 레즈비언 애인인 릴리가 병으로 죽어가지만 함께 했던 추억을 회상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형사인 캐시는 여고 동창생의 자살사건을 맡고, 뛰어난 미모를 지녔지만 맹인인 여동생 캐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인생의 이야기들을 듣는다.
영화는 옴니버스 스타일처럼 서로의 독립적인 이야기들이 축을 이루어 가지만,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우연 속에 부딪치면서 서로의 일상에 「무표정하며 직업적으로」 개입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얼굴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