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덕 한국과학재단 사무총장
1980년대까지 대학은 기초연구 수행을 통한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국가연구소는 연구탁월성에 기초한 자체 발생적인 연구과제 수행에 초점을 맞추어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개발 패러다임은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 사이의 에너지 위기와 이에 따른 국가연구소의 연구개발 효율적 운영 및 경비절감, 생산성 증대 요구 등의 환경변화에 따라 연구와 산업을 연계하는 산·연 연계를 거쳐 지식가치의 중요성과 혁신친화적 문화를 중시하는 21세기 지식관리 연구개발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식관리 연구개발 패러다임의 원동력은 정보기술(IT)과 생명과학기술(biotech)다.
미국의 경우 행정부가 정보과학기술 분야를 미국의 전세계적 과학기술 리더십을 유지시켜주는 전략분야로 채택하여 미국립과학재단(NSF)을 중심으로 정부부처간 핵심협력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생명과학기술 분야에는 미 연방정부 기초연구예산의 50% 이상을 투입하는 제1의 연구분야로 삼고 있다. 특히 생명과학 분야의 경우 게놈연구 등을 통한 미래의료·식량·환경문제의 해결을 기대하면서 21세기 생명과학의 시대 주도를 꿈꾸고 있다.
이같이 변화되고 있는 과학기술 환경변화와 21세기와 함께 새롭게 대두되는 지식기반사회에서의 연구개발정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방향을 요구하고 있다.
첫째, 연구개발활동이 투자 중심에서 혁신(innovation) 중심으로 이행해야 한다. 이것은 연구개발투자 증대를 통한 연구개발활동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전통적인 연구개발 관리목표로부터 연구개발활동을 통해 생산된 지식을 시장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새로운 상품과 공정 및 서비스로 전환시키는 혁신과정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가상적 연구기반구축(virtual infrastructure)에 대한 투자증대가 요구된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IT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연구시설·연구기기 등과 같은 전통적인 물리적 연구개발 기반구축(physical infrastructure) 중심에서 효율적인 정보교류를 위한 웹체계 구축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가상적 연구기반 구축에 대한 투자증대를 통하여 급변하는 국제과학기술 환경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셋째, 지식기반사회에서 성공적인 연구개발정책 수행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연구수행에 있어 경쟁과 자율의 확대다. 영국정부가 발간한 1998년 경쟁력 백서에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기술혁신을 창출하기 위해 시스템 구성요소간 경쟁을 촉진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는 간섭주의적 정책과 규제를 피하고 연구주체들의 자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혁신은 경쟁과 자율에 바탕을 둔 연구개발의 산물이라는 점이 그 이유다. 이는 연구수행 주체자 상호간의 경쟁유도와 함께 연구자 개인에 대한 자율확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넷째, 지식기반사회 연구개발 정책의 핵심은 기초과학연구에 대한 투자확대 정책이다. 기초과학연구는 기술혁신을 창출할 수 있는 지식과 과학적 원리를 발견하고 창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기초과학연구는 레이저·반도체·인터넷 등 혁명적 기술혁신의 기초를 제공하여 왔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기술진보의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과학연구의 결과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초과학연구와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것은 대학의 역할이다. 대학은 지식을 창출하고 차세대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이중역할을 수행하여 국가의 번영과 지속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이루는 데 기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창의적 문화의 진흥이다. 창의성은 지식기반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기반이다. 기술혁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의 속성상 창의성 및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연구개발활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21세기 새로운 연구개발 패러다임에 알맞은 성공적인 연구개발정책은 이같이 급변하는 과학기술 환경변화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창조적이며 융통성 있게, 그리고 민첩하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