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무선인터넷서비스 역할분담

성규영 (주)에어아이 사장 gysung@airi.co.kr

일본에서는 2년여의 치밀한 준비 끝에 99년 2월부터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NTT도코모가 중심이 돼 시작된 일본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는 불과 1년 3개월이 지난 현재, 그 사용자 수가 9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 숫자는 당초 계획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다.

이렇게 일본이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잘 해 나가고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필자는 그것을 이동통신 사업자와 콘텐츠 공급자가 각자의 할 일에 충실한 이른바 「역할 분담론」으로 본다. 초기 일본의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실시했던 몇 가지 주요 정책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수 통신프로토콜을 개발, 보급하여 공급자가 이를 쉽게 배워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둘째, 공급자들이 재정적 부담 없이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콘텐츠 유료화 정책을 강력하고 일관성 있게 실시하였다.

셋째, 완벽한 과금시스템을 구축하고 콘텐츠 사용요금을 이용자들로부터 징수하여 최소 비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급자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사용료 징수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넷째, 이동통신사업자들이 직접 포털사이트를 구축하지 않음으로써 유사 콘텐츠의 개발을 조장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콘텐츠 공급자들과 경쟁관계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았다).

다섯째, 콘텐츠 공급자들과 호혜의 원칙아래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서비스 초기에 겪게 되는 콘텐츠 공급자들의 취약한 경영환경을 개선해 주었다. 상대적 약자인 콘텐츠 공급자들의 자존심을 세워줌으로써 양질의 콘텐츠를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던 것이다. 좋은 콘텐츠가 공급되면, 사용자들이 몰려 자연스럽게 수익모델이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원리인 것이다. 일본의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이를 양보와 윈윈 전략을 적용한 「역할 분담」을 통해 실천하였고, 그 결과는 성공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반면 국내 현실은 어떠한가. 국내에서는 99년 초부터 일본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무선인터넷 서비스 방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동통신 사업자 주도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는 아직까지도 빈 수레처럼 요란한 광고 소리만 울리고 있다. 물론 인터넷용 휴대폰의 보급 지연과 공급량의 절대부족, IS95B서비스망 구축의 지연, 그리고 전용 프로토콜 채택과 적용에 따른 제반문제점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아직도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본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근본원인은 일본의 사례에서 보았듯 「역할 분담」의 미비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하고 반문하게 된다. 신규사업 초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관주도형 또는 대기업 주도의 획일적 협력체제도 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은 그 어떤 비즈니스모델보다 개방적이고 범 지구적인 사업이다. 따라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서비스환경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동통신사업자들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모양새로 1년 세월을 허송했다.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차세대의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고 판단하여 제각기 독자적인 사이트를 구축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소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독점적으로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하여 공급자들과의 불공정 계약을 강요했다. 또한 급선무였던 과금시스템 개발이 지연됐고, 수익모델에 대한 명확한 방침결정이 늦어져 콘텐츠 공급자에게 수익배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아가서는 콘텐츠 공급자들의 경영환경을 더욱 어렵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무선인터넷 서비스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우수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공급자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자유스럽고 공정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역할」인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콘텐츠 공급자와 상생(相生)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에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