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공간에서의 싸움이 현실세계의 폭력으로 이어져 물의를 빚어온 PC게임 「리니지」가 얼마전 공정위에서 청소년용으로 적합판정을 받았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아이템은 현실세계에서 현금으로 거래됐다. 다른 이용자의 아이템을 폭력으로 갈취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러한 일들이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면서 리니지는 한때 네티즌 사이에 「사이버공간 예절논쟁」을 촉발시켰다.
◇사이버공간에서의 통신문화,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인터넷세상에서 한국인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다. 특히 나이 어린 청소년 사용자가 많은 게이밍존이나 베틀넷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절망적이다. 베틀넷 게시판에는 한국인을 「바이러스」라고 거침 없이 표현한 글도 올라와 있다. 게임 게시판이나 뉴스레터에는 인사도 없이 나가거나 게임 도중 접속을 해제하는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을 성토하는 글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인터넷채팅을 시도했다가 접속지역에 「kor」자가 들어간 것을 본 상대방으로부터 대화거부를 당하는 경우도 잦다.
한편 「dbs23」이라는 ID를 가진 한 영국인 이용자는 인터넷 채팅 중에 「한글코드로 된 응답을 받고 당혹했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국내 PC통신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은어나 속어를 남발하고 신분을 위장하거나 익명을 구실로 상대방에게 폭언을 하는 사례부터 바이러스를 만들어 네트워크를 통해 유포하거나 해킹을 하는 파괴적 행위까지 다양하다.
하우리바이러스연구소(소장 김남옥)는 지난달 현재 1000종에 이르는 국산 바이러스의 대부분이 청소년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고 추측한다.
이 연구소의 최원혁 연구원은 「바이러스 내부에 삽입하는 문자열에 생년월일이나 다니는 학교이름을 표기한 경우도 있어 제작자가 청소년임을 유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원혁 연구원은 학생들간 경쟁적으로 바이러스와 이에 대응하는 백신을 제작, 컴퓨터 실력을 과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덧붙였다.
이용자가 2600만명을 넘는 이동전화도 예절 부재 현상을 겪고 있다. 「응, 난데」라고 목청을 돋우는 「난데족」, 「야!」 지하철에서 고성을 지르며 주위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튈래족」 등. 우리 사회에는 아직 기본적인 「폰티켓(이동통신 에티켓)」을 채 익히기도 전에 휴대폰을 손에 넣은 「미숙아」가 많다. 역시 이들 대부분은 청소년이다.
◇은어, 이모티콘, 세대간 격차 벌여
「야리까다」 「송방」 「범」 「깔식」이라는 용어의 뜻을 안다면 그는 분명 PC통신에 익숙한 세대다.
인터넷·PC통신 등 사이버공간에서 청소년 세대는 그들만의 언어로 얘기한다.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비속어나 은어·약어 등. 그들의 문화 안에서 변형되고 때로는 창조된다.
회사원 김모씨(27)는 어쩌다 PC통신의 중고생 대화방에 들어가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에서 그들과 벽을 느낀다고 말했다.
휴대폰이나 삐삐 등 휴대통신 수단의 발달에 따라 문자를 숫자화해 약어를 만들거나 표정·동작·사물 등을 부호나 특수 문자로 표현하는 「이모티콘」도 등장했다.
이러한 비속어·은어·이모티콘으로 인한 성인과 청소년 사이의 이질감은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된다.
성인들은 PC통신이나 인터넷 채팅방의 「중딩만」 「고딩도 출입금지」 등의 제목에서 세대차이를 느낀다. 반면 청소년들은 이질적인 자신의 문화를 이해못하는 성인을 「구세대」라고 폄하한다.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자녀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부모, 비속어 투성인 논술시험지를 채점해야 하는 고충을 털어놓는 고등학교 교사가 늘고 있다.
◇대책을 마련하고 모두의 각성이 필요한 때
시민단체는 대부분 잘못된 통신문화에 대해 단속과 규제보다는 선도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제와 억압으로 반발을 사기보다 어른부터 자연스럽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 청소년 통신문화 정화에 앞장서는 단체로는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대한주부클럽연합회·YMCA 산하 청소년 유해환경감시단 등이 있다.
이동전화사업자도 이에 질세라 「청소년 통신문화 바로세우기」에 앞장섰다.
이러한 움직임은 통신공해 주범이 이동전화라는 사회적 비난을 덜고 이동전화 주고객 연령층인 청소년의 통신문화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을 통감하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SK텔레콤은 TTL회원의 전용공간인 TTL존에 「통신문화를 바로합시다」라는 내용의 스티커와 포스터를 부착해 청소년가입자의 호응을 얻었다.
한통프리텔은 지난해 「넘버3」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씨를 모델로 이동전화예절에 관한 극장용광고를 제작, 상영해 큰 홍보효과를 거뒀다.
한통프리텔은 올해에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꾸준히 통신문화정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매달 요금청구서와 함께 나가는 소식지 안에 이동전화 에티켓 코너를 마련하고 사외보에 「올바른 이동전화문화 정착을 위한 아이템」을 연재하고 있다.
LG텔레콤도 사보에 「통신예의지국을 만듭시다」라는 특집을 마련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솔엠닷컴은 지난 4월부터 청소년 방문객이 많은 018홈페이지(http://www.018.co.kr)를 통해 「폰티켓 바로 잡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1일부터 오는 25일까지는 「네티즌이 뽑는 휴대폰 통화 꼴불견 베스트 5」를 공모중이다.
평소 생활하면서 느끼는 꼴불견 휴대폰 사용 행태를 018홈페이지에 올리면 오는 30일 당첨자 34명의 명단을 인터넷에 공고하고 디지털카메라·향수 등 경품을 지급할 계획이다.
또 단말기 보조금 폐지로 1일부터는 부모의 동의 없이 청소년이 무단으로 이동전화에 가입하는 사례가 줄어들 전망이다.
인터넷에도 네티즌과 통신사업자의 자성이 빗발친다. 일부 통신사업자들은 가입자 약관이나 대화실 게시판에 기본적인 통신예절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용자 스스로 각성 필요해
지난달 말 현재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 수는 전체 국민의 36.7%인 1500만명을 넘어섰다. 이동전화 가입자는 2700만여명. 인구대비 이동전화 보급률은 핀란드·스웨덴·홍콩 등에 이어 세계 7위, 이용자 수는 미국·일본·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5위로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그러나 국내 통신문화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계도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용자 스스로의 각성이 절실하다.
바야흐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에티켓이나 규범의 준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유의 전통이나 문화못지 않게 보편 타당한 새로운 통신질서가 요구된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