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디지털경제가 사회 깊숙이 파급되면서 그 반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소위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 산이 높을수록 골도 깊어지는 셈이다.
대기업 부장으로 재직중인 K씨(45)는 요즘 중학생인 아들과 대화하는 데 커다란 벽이 놓여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공통된 대화주제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아들은 귀가 후에 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아버지와 대화할 시간도 적은데다가 컴맹인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아예 대화자체를 꺼려한다. K씨는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 채팅방에도 기웃거렸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채팅용어, 독수리 타법 수준인 타자실력으로는 끼여들 여지가 없었다. 인터넷에 문란한 사이트가 많다는 얘기에 문득 걱정돼 아들 PC를 조사해보기도 했지만 K씨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
서울 강북의 한 전산담당 L 교사는 학생들의 인터넷 활용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겨울방학 자신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라는 숙제를 냈다. 그러나 50명 중 메일을 보낸 학생은 불과 세 명뿐. 집에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컴퓨터가 있는 학생은 10여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한달에 4만∼5만원이 넘는 통신비 때문에 인터넷 접속도 짬짬이 하는 수준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소위 부촌으로 알려진 강남쪽 사정은 다르다. 대부분 가정에 PC가 있으며 인터넷은 친구들과 동질감을 나누기 위한 기본조건이 된 지 오래다.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지난해 조사한 국민생활 정보화 실태와 정보화 인식자료에 따르면 국내 정보격차 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정보의 접근과 관련 있는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률이 연령·교육·소득별로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컴퓨터 보급과 관련, 연령별로는 20대가 51.4%로 50대 이상의 25%에 비해 2배 정도의 격차가 발생했다. 교육 수준별로는 중졸이 31.8%인 반면 대졸 이상은 67.8%로 약 2.1배의 격차가 존재하며 소득수준별로는 100만원 이하 소득계층이 35.3%, 400만원 이상은 87.8%로 약 2.5배의 격차가 존재한다. 인터넷 보급률에서도 거의 비슷한 양상이다. 연령별로 20대가 19.6%의 보급률을 보이는 반면 50대 이상은 11.6%로 약 1.7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학력별로는 중졸이 6.7%에 비해 대졸이상은 26.8%로 4배 이상 높았다. 소득수준 별로는 100만원 이하 소득계층이 7.4%인 데 비해 400만원 이상 계층은 41.5%로 5.6배가 차이난다. 정보 접근의 기반인 컴퓨터와 인터넷의 경우 연령이나 학력, 그리고 소득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 이용률을 보면 골은 더욱 깊어진다. 개인별 컴퓨터와 인터넷 이용에 따른 차이를 조사한 결과 컴퓨터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약 1.6배, 인터넷은 2.5배 정도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령별로 컴퓨터는 20대가 50대보다 7.7배 이상 이용하고 있으며 인터넷의 경우는 20대가 무려 50대의 26.8배나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력별로는 대졸 이상이 중졸에 비해 컴퓨터는 27.8배, 인터넷은 31.3배 이상 더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소득수준별로는 400만원 이상 소득계층이 100만원 소득계층에 비해 컴퓨터는 2.8배, 인터넷은 4.1배 정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접근에서의 차이는 자연적으로 소프트웨어 활용능력에서도 격차를 벌리고 있다. 소프트웨어 활용능력은 실질적으로 네트워크 접근과 이용을 가능케 하는 정보이용 능력을 결정하기 때문에 정보불평등 현상이 그대로 반영된다.
워드프로세서의 경우 연령별로 20대는 67.3%가 잘 이용하는 반면 50대 이상은 22.9%만이 이용이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수준별로는 중졸은 33.3%만이 이용하나 대졸 이상은 69.2%가 이용가능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틸리티와 시스템관리의 경우 성별로 남성은 35.9%가 능숙한 반면 여성은 15.9%만이 이용한다고 답했으며 연령별로는 20대의 35.9%가 잘 이용하는 반면 50대는 2.9%에 그쳤다.
지역별로도 정보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하나로통신의 경우 주로 아파트나 오피스텔과 같은 주거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실시, 단독주택이 많은 지방에는 아직까지 인터넷서비스를 실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통신은 전국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고 하나 아직까지 대도시에 영업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지방 중소도시나 시골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 일부 지역의 경우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전화국과 가입자간의 거리가 너무 길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도 어려운 실정. 서울지역 신규 아파트의 경우 하나로통신·한국통신·두루넷·드림라인 등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가 서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으나 시골지역 가입자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해도 당분간 서비스가 어렵다는 얘기만을 되풀이 해 듣는 상황이다. 요즘 건설되고 있는 고급 아파트에는 근거리통신망(LAN) 환경이 기본이다. 이같은 사이버아파트에서는 초고속 인터넷 통신은 물론 주문형비디오(VOD),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첨단 정보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반면 구형 아파트에는 아직도 아날로그 모뎀을 이용한 통신방식이 보편화돼 있다. 사업자들이 손익 분기점을 넘기 힘든 아파트의 경우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보격차는 곳곳에 상존하고 있다. 정보격차는 향후 정보사회가 진전될수록 그 격차를 더욱 크게 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기술과 기기 도입은 일단 한번 격차가 벌어지면 좁히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같은 정보격차는 정보 불평등을 야기해 예전의 가난을 대물림했듯이 정보소외 계층을 대물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는 정보가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적 수단이며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조건을 일정수준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정보·정보기술에 대한 접근과 사용능력이 필수적이다. 지난 총선에서 보았듯이 선관위의 인터넷사이트는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사이버 민주주의 시대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또 사이버트레이딩, 인터넷 실시간 뉴스 서비스 등 인터넷에 익숙하다면 객장 투자자보다 신속한 투자결정이 가능하다. 또 온라인 세금, 사이버뱅킹 등이 도입됨에 따라 이를 이용하는 자와 못하는 자는 노동시간 투입분도 달라지게 된다.
이처럼 정보화에 소외된 계층은 정치, 경제에서도 소위 「왕따」를 당하게 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보소외계층의 등장은 사회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심화된 정보불평등은 다수의 정보소외계층을 낳고 이러한 정보소외계층 확대는 소득 재분배 요구 심화, 사회적·정치적 통합 저해 문제를 초래하게 되며 국가 사회적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낳아 정보사회 구현을 저해할 수 있다.
정보화를 통해 불평등 완화와 한단계 발전된 인간복지를 추구한다는 본래의 복지 정보사회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정보불평등 문제는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해외 선진국조차도 정보격차가 심화돼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달 한달 요금이 1달러인 염가 전화서비스를 30만 미국 인디언 가구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컴퓨터 업계는 미국의 경제번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1억달러를 내놓기로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최근 실리콘밸리 근처에 있지만 개발에서 소외된 이스트 팰러앨토를 방문, 『우리는 새로운 기술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계층 분리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며 정보격차(디지털 디바이드) 해소를 호소했다. 미 상원은 지난 3월 미 최초의 디지털 디바이드법이라 일컫는 「뉴 밀레니엄 클라스룸」법을 최근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시켰다. 이는 기업체가 구형 컴퓨터를 흑인이나 저소득층 학교에 기부하면 50%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도 정보격차에 대한 해소가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정통부가 나서 100만원 미만의 초저가 멀티미디어 PC를 공급한 것도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한 일환. 또 지난 1월 정통부가 초고속 통신망의 조기 완료를 발표하면서 도·농간, 계층간 정보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중점적으로 컴퓨터 교육을 전개한다고 발표했으며 주부대상 무료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보접근과 정보 이용의 평등성은 이제 국민의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다. 진정한 정보 평등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향후 정보격차 심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도 이제는 정부, 기업이 수익차원에서 접근을 재검토해야 할 시기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