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미국 다음가는 세계 경제대국으로 통하지만 정보화 수준에서는 그 위상이 현격히 떨어져 아시아 지역에서도 선두그룹에 속하기 힘들다.
정보 인프라의 척도로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PC나 인터넷서버 등의 보급률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PC의 경우 2000년 3월 현재 인구당 보급률이 4.9명당 1대꼴로 한국의 5.5명당 1대에 비해 높다. 세대당 보급률도 2.5가구당 1대로 한국의 5.2가구당 1대에 크게 앞서고 프랑스의 4가구당 1대(98년 기준)보다도 낫다. 물론 미국의 2가구당 1대에는 뒤진다.
서버 수에서도 2000년 1월 현재 일본은 263만6541대로 한국(28만3459대)의 10배 수준이고 대만(59만7036대), 싱가포르(14만8249대), 홍콩(11만4882대), 중국(7만1769대), 말레이시아(5만9012대), 태국(4만176대)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크게 앞선다.
그러나 이같이 괜찮은 인프라를 정보교류에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일본이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대만·홍콩 등 이른바 「아시아 4룡」 또는 「e소룡」에 비해 별로 나은 게 없다.
99년 말 현재 인터넷 보급률을 보면 일본은 약 15%로 대만과 비슷할 뿐 40%에 육박하는 싱가포르, 20%를 넘은 한국, 20%에 육박하는 홍콩 등에 뒤진다.
이처럼 경제대국 일본에서 인구 100명 중 85명이나 인터넷(정보)에서 소외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비싼 통신료가 원인이다. 게다가 인터넷 보급 확대를 위해 통신요금 체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해 온 것이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미국이나 유럽 각 국이 90년대 중반부터 도입해 온 정액제가 일본에서 검토된 것은 불과 2년 전이고, 본격 등장한 것은 지난해 부터다. 그것도 도입 초기에는 가격이 1만엔으로 높게 책정돼 일반인들에게는 적지않은 부담이 됐다.
물론 일본도 평등한 정보화 사회 구현을 위해 다각도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가장 문제가 되는 통신요금을 낮추는 것으로 최대 통신사업자인 일본전신전화(NTT) 등에 요청한 결과, 지금은 정액요금의 경우 5000엔으로까지 내려갔다.
또 PC 기반의 인터넷 사용에 부담을 갖고 있는 가정주부나 노인 들을 인터넷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저렴하면서도 손쉽게 쓸 수 있는 네트워크 전용 단말기의 보급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와 병행해 정부와 민간기업 및 학계가 연계해 TV 등 일본의 강점인 가전기기를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크 환경도 추진중이다.
우정성이 NTT·후지쯔·게이오대학 등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디지털가전용 고속인터넷 기술이 그것으로 오는 2002년까지 완료해 실증실험을 벌일 예정이다.
특히 우정성은 디지털가전용 인터넷 기술을 통해 일본의 인터넷 보급률을 오는 2010년까지 50%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이밖에도 디지털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TV방송이 정보 평등화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오는 12월 본방송이 개시되는 방송위성(BS)디지털방송으로 문자정보를 제공하는 양방향 데이터방송 서비스가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 제3세계 국가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큰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정보격차 문제.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선진국 사람들의 배부른 고민」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물론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 서남 아시아와 남미 등에 살고 있는 제3세계 사람들에게도 정보격차 문제는 그렇게 실감나는 토론주제가 못된다.
최근 이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영국의 BBC방송(http://www.bbc.co.uk)은 『아직도 전 인구의 80% 이상이 문맹과 절대빈곤에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컴퓨터의 보급을 확대하자는 논의가 제3세계 지역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구촌의 관점에서 정보격차 문제가 심각성을 더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 http://www.undp.org)에 따르면 전세계 60억인구 중 15%에 불과한 선진국이 인터넷 사용 인구의 88%를 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전세계 인구의 약 20%가 몰려 있는 서남 아시아의 인터넷 인구비중은 1%를 넘지 못한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7억4000여만명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에 보급된 전화회선을 모두 합쳐도 1400만여 회선에 그치고 있다. 이는 미국 뉴욕이나 일본 동경의 한개 도시에 보급되어 있는 전화회선수에도 못 미치는 실적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최근 UN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중심이 돼 벌이고 있는 디지털 빈부격차 해소 노력에 대해, 심지어 그 수혜자인 제3세계 사람들조차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인터넷이 몰고 오는 정보혁명은 최근 제3세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영국의 BBC방송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신문(http://www.latimes.com)은 최근 「제3세계의 정보혁명」을 주제로 한 특집을 마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소개된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최근 제3세계에서 불고 있는 디지털 빈부격차의 진원지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인터넷으로 1인 잡지를 발행하는 마우리스 우데 신부>
아프리카에서도 최고 오지국가로 분류되는 버키나파소에서 30여 년 동안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마우리스 우데 신부가 최근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를 창간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인터넷 덕분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아프리카 지역을 누비고 있는 동료 신부들을 비롯한 자원 봉사자들과 농업관련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혼자서도 잡지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UNDP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 우데 신부의 소박한 희망은 자체 웹사이트를 개설해 아프리카 전역의 농부들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고비사막 주민들도 인터넷 카페에서 넷맹 탈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도 최근 UN 아시아·태평양 개발계획(APDIP)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인터넷 카페 사업이 지역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고비사막 등에 흩어져 있는 몽골 사람들이 이 카페를 찾아 뉴스검색은 물론 해외의 친지와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면서 인터넷의 묘미를 만끽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APDIP는 이에 따라 앞으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소규모 전자상거래 사업에도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시행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세계은행 등의 지원을 받아 제3세계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다양한 특산품을 판매,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례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페루 친체로스 마을 장로들도 어엿한 인터넷회사 주인>
50여가구가 사는 페루의 친체로스 마을 장로들은 자기네 채소를 온라인을 통해 뉴욕의 구매자들에게 판매한다. 그 결과 마을의 소득이 불과 1년 사이에 500달러에서 1500달러로 껑충 뛰었다.
또 중국 내륙지방에서 농부들은 현재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마늘을 독일의 중국식당 체인점에 납품하고 있다. 이는 중국 농부들이 웹사이트를 개설해 해당 식당체인과 정보를 교환하고 거래를 성사시킨 덕분이다.
요르단의 복지단체인 누르 알 후세인 재단은 남부 요르단의 척박한 베두인족 거주지역에 흐웨이타직조협회를 설립했다. 처음에 25명의 여성들에게 뜨개질과 염색 및 기본경영 기법을 교육하기 시작한 이 협회는 현재 12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사업체로 성장했다. 자체 웹사이트를 개설해 놓은 이 협회는 미국 애틀랜타 교외지역 등 전세계 시장에 제품을 공급한다.
<1500개 인터넷 회사에 자금지원한 방글라데시 그라멘 은행>
빈곤층 상대의 소규모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방글라데시 그라멘은행같은 영세금융 기관들은 이미 1500만의 영세기업에 대출해주고 있다. 대출사업을 인터넷과 연결시킬 경우 대출건수가 급격히 증가해 빈곤퇴치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영세금융 기관들이 독자적으로 빈곤퇴치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이 사례는 은행이 빈곤층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소규모 자본을 제공한 것을 바탕으로 영세 상인들이 어엿한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부유한 선진국 구매자들이 일상생활 중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대규모 유통매장 대신 인터넷에 개설된 특산품 사이트를 찾는 비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콜롬비아의 오지마을에서 생산되는 진기한 과일을 미국의 대도시 교외지역의 전문과일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인터넷의 확대가 부유한 선진국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 수도 있고 빈곤국들이 세계시장의 고립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1000달러 정도의 소액을 대출해 주는 사소한 변화가 많은 제3세계 사람들의 삶의 방식까지 바꿔놓았다는 것은 전 지구촌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세계화시대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역설이다.
이는 모두 인터넷의 정보유통이 국경을 초월하며 과거에 고립돼 있던 영세한 농부와 수공업자들이 전세계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터넷의 이러한 장점이 원활하게 발휘할 때 인터넷이 인류 전체의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재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